<영화 테스 중에서/소순희>
비망록
저 바다에서 캭, 죽어버리면
마침내 없었던 일로 치는 세상의 흔적을
나는 알고 있다
이방의 거처에 숨겨둔 비밀의 문을 열고 가면
겉치레로 감아온 비망과 표적을 향해 적중하는
현재 진행형의 내 생각들은 비로소 소멸한다
잊지 말자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일란성 기록,
그 사념의 허리를 껴안는 몽상의 계절도
눈 속에 묻힌 뒤 남은 건 고요뿐
바다는 수평을 검게 그어놓고 사실을 적고 있다
해안선을 끼고 잘 정리된 기억들이
횟집처럼 늘어선 포구에 잠시 서성이면
겨울의 예각을 물어뜯는 파도는
내 비망의 언저리를 깊게 파고든다
소순희/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