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누님

소순희 2015. 8. 25. 08:15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게 감기(고뿔)였지 싶다. 누님의 등에 납작 엎드려 귀를 등에 대고 옷에 콧물을 묻혀대던 다섯 살쯤의 유년기는 특별한 일을 제외하곤 그다지 기억 밖으로 아스라이 멀어질 뿐이다.

가을비가 갠 뒤 누님은 나를 업고 뒷골 초입의 밤나무 아래서 미처 영글지 못 하고 떨어진 밤송이를 주워 고무신 발로 지그시 누른 후 막대기로 가시가 성한 껍질을 벗겨 푸르스름한 풋밤을 꺼내 겉껍질을 벗긴 후 속껍질을 이빨로 긁어 벗겼다. 덜 영근 하얀 풋밤을 입속에 넣어주며 흐믓해 하던 아홉 살 누님의 불그레한 볼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지금도 풋내나던 밤의 속살이 입안에 부드럽게 퍼지듯 유년의 추억도 그렇게 떠오른다.

가끔 누님의 노랫소리는 등에 귀를 대고 엎드린 내 귀에 웅웅 거리며 불분명한 음성으로 전해오곤 했는데 그게 오히려 살폿 잠이 들게 하곤 했다.


 아버지가 서둘러 다시는 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셨다. 마흔 몇해의 가을이었다.

마당에선 벼 타작을 하느라 발로 밟는 탈곡기 소리가 웅웅대고 사람들의 머리는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아버지는 방에 누워 그 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애가 끓었을까? 여덟 마지기 논 벼 타작을 해 봐야 겨우 먹고사는 일이었으니 빈농의 처지를 한탄하며 점점 사위어가는 당신의 생명줄을 감지했을까?

지금 이라면 얼마든 고칠 수 있는 우울증 이었지 싶다. 그날 밤 큰댁에서 자고 있는데 꿈결인 듯 누군가가 말했다.

"쌔집(억새집) 아재가 죽어 부렀어,어쩐댜!" 그 길로 아버지 생전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

내가 6학년이었다. 어머니와 큰 누님은 논밭으로 나가고 작은 누님은 열여덟 살에 도회지 공장으로 갔다.

그해 겨울 누님은 커다란 가방에 설빔을 사가지고 왔다.

꽁꽁 언 손을 아랫목 이불 밑에 넣고 울었다. 갑자기 뜨거운 기운에 녹는 손가락이 얼마나 아렸을까?


 이차 산업이 활발히 펼쳐지기 시작한 70년대의 생산 기반은 구로공단이라는 거대한 아가리로 가난한 청소년들을 흡입했다.

어느 생산직 회사든  값싼 노동력으로 수출의 금자탑을 쌓았다. 수출 역군이란 타이틀 아래 청춘은 그곳에서

고스란히 빛도 보지 못한 채 시들어 갔다. 누님도 그렇게 주어진 여건을 받아들이며 원망도 자신의 처지를 한탄도 하지 않았다.

시대의 흐름에 동반한 삶에서 작은 것에 감사와 기쁨을 나누며 몇 푼의 돈에 수놓아지는 행복지수는 지금보다 더 좋았으리라 생각된다.


 할아버지 대(代)는 농토도 많고 부유했는데 그놈의 빚보증 서주고 재산을 타인의 입에 다 몰아넣고 말았다.

삼 남매를 두고 씨름판을 전전하며 송아지를 상으로 받아 허랑방탕으로 허비하며 똘마니 두엇 데리고

만주까지 원정 갔다가 삼팔선이 막히자 돌아오지 못했다.

 누님은 아버지의 유전자를 더 많이 받았다. 조용하고 부끄럼을 많이 탄다. 은근과 끈기로 일평생을 견뎌 낸

예쁠 것도 없고 키가 큰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하고 가난한 가정의 후예로 살아왔다.  

나 또한 누님과 견줄 바 되지 못한 게 사실이라 한 태에서 생긴 생명이지 않은가!

누님은 순종적이다. 악다구니하며 싸워 본 적이 없고 그저 순리대로 살아가는 은둔자처럼 그렇게 늙어간다.

달리 말하자면 마음이 곱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심성이 본질을 성악설에 둔다면 잘 은폐된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누님만은 밑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여 때론 치받쳐오는 뭔가가 늘 손해 보는 것 같아 내가 마음이 아플 때가 종종 있다.

 

  시모가 암으로 돌아가시자 누님은 부산에서  생활을 접고 장수로 낙향했다. 시부를 모시면서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수년간 그리 살다 시부도 산에 누우시고 말았다.

사과가 붉게 익어가는 여름, 누님 집에 갔다. 일교차가 심한 산촌이라 늘 고즈넉하고 선선한 기후가 생육에 적당한 적소임을 보여준다.

누님은 밭에서 나는 온갖 것들을 싸준다. 꼭 어머니가 자식을 챙기는 것처럼 말이다.

훗날 어머니가 세상에 계시지 않으면 대신 어머니처럼 그리운 사람 누님! 늘 마음속에 다정다감으로 존재한다.

가족이라는 끈은 절박한 상황이나 마음지쳐 쓸쓸할 때 찾아 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이음줄로 풀리거나 끊어질지라도 언젠가는 다시 이어질 영원한 연결 고리로 증명되듯 나는 누님이 참 좋다. 그리고 사랑한다.

 

                                                                                                           2015/8/소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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