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드는 집/20호/소순희작/대한민국회화제 출품작>
뒤란 풍경
내가 초등학교 3학년쯤 뒤란 돌담가엔 고욤나무가 엄지손가락만큼 두께로 자라고 있었다.
그해 봄 아버지는 평촌아재를 모시고 와 고욤나무를 땅에서 10여Cm쯤 남기고 자른 후 막 새순이 피기 직전의
품종 좋은 감나무 잎눈이 두어 개 붙은 새 가지를 6~7Cm로 엇비슷하게 자른 후 원줄기를 쪼개고
그 껍질 부위와 새순의 껍질 부위를 맞춘 후 비닐로 동여매고 봉분처럼 흙을 덮어 놓았다.
수일이 지나자 그곳에서 뾰롯이 새싹이 돋고 감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다음 해 부터인지 몇 개의 감이 튼실하게 열리기 시작했다.
점점 감나무 그림자가 넓어지는 뒤란은 언제나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졌다.
가을 어느 날 숙제한다고 방바닥에 누워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글씨를 쓰고 있는데 뒷문 밖에서
곱게 물든 감나무잎이 뚝, 유난히 큰 소리를 내며 펄럭펄럭 지고 있었다.
바람도 없는데 후둑후둑 눕는 손바닥보다 큰 감잎의 단풍든 잎이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십여 리 남짓한 독 짓는 점에서 큰 독을 사서 지게에 지고와 장독대에 하나, 둘 올려놓았다,
그리곤 육 학년 늦은 가을날 아버지는 오지 못한 먼 길을 떠나셨다.
어머니와 큰 누님이 날마다 닦아 놓은 장독대는 옹기종기모여 사철 볕 아래 반짝반짝 윤이나고 있었다.
어느 해 봄날 나는, 큰 장독 하나가 뚜껑이 열려있는 채로 볕을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 호기심으로 들여다본
그 안에는 맑은 하늘이 들어 와 있고 내 얼굴이 살짝 스쳐 보였다.
그리곤 붉은 고추 두어 개와 솔잎과 검은 숯덩이가 떠 있었다.
"이그, 누가 이 더러운 것을 간장독에 넣었지?"
나는 그 숯덩이를 건져 대밭에 던져버리고 나서 어머니께 말했다.그러자 어머니는
"야가 시키지 않는 짓을 허고댕긴댜 썩을..."하고 나를 나무랐다.
누님이 심어 놓은 장독대 가엔 채송화며 과꽃이 곱게 피어났다.
그 따스하던 장독대 있는 뒤란도 겨울엔 몇 가닥의 나무 그림자만 쓸쓸히 그려지다 지워지곤했다.
다시 새봄엔 손가락 두께의 죽순이 붉게 땅을 비집고 올라왔다.
모든것이 생기를 찾는 뒤꼍으로 들랑날랑 발길이 잦아졌다.
키 작은 대밭을 울타리로 뒷집과의 경계가 자연스레 이뤄진 대밭가엔 큰 살구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봄이면 하얗게 살구꽃이 꽃구름처럼 피어나고 바람 부는 날이면 꽃잎이 눈처럼 날리곤 했다.
장독대 위에 쌓인 꽃잎을 한 줌 쥐어보면 보드랍고 푹신한 촉감이 좋아 코로 가져가 냄새를 맡곤했다.
여름이면 잘 익은 살구 향이 늘 뒤란으로 나를 이끌었다.
바람이 불면 후두둑 살구가 떨어지고 나는 소쿠리에 담아 씻어 먹곤 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고 뒷집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무슨 일인지 그 살구나무가 베어지고 말았다.
그 한 나무가 유년의 내 감성을 키워준 아름다운 나무였다는 걸 안 것은 어른이 되고서도 오랜 후의 일이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어른들의 속을 알리 없는 나는 못내 안타까웠다.
뒷동산에 올라보면 눈에 들던 회색 억새 지붕과 흰 살구꽃과 녹색의 감나무가 잘 어우러진 고향집도
지금은 뜯기고 나무도 베어지고 없다.
바람 불면 대밭의 스산한 바람 소리와 우두두두 감나무 사이를 스쳐 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던
유년의 사철 밤도 이젠 아득한 추억 속에 존재할 뿐, 꿈도 꾸어지지 않는다.
소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