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봄/10호/소순희작/2014/유화>
개미귀신
소순희
우화(羽化)를 위해 당신 몸이 필요해
체액을 모조리 빨아 먹히고 남은
당신의 껍질은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지
허구한 날 속울음 삼키며 견뎌온 긴 날
먹이사슬에 존엄을 지탱하는 오늘이 있어
원추형의 지하 방은
내겐 천국이지만 당신에겐 지옥이야
퇴화한 감각기관 눈은 우주를 거스르며
남몰래 지상의 날을 꿈꾸지
그런, 밤마다 별빛 외로운 모래밭 모퉁이로
악마의 아가리는 날을 세우고
당신과 나의 관계는 치욕의 불협화음
나의 먹이가 된 개미, 당신을
애도하며 명주잠자리로
변신을 꿈꾸는 나는 눈먼 개미귀신
2016
월간 모던포엠 이달의 작가 수록(2017.10)
<개미귀신>
난원형의 황회색 복부가 강모로 싸여 있고, 앞가슴은 움직이기 쉬운 목을 형성하고 있으며, 크고 네모난 두부에는 낫 모양의 강력한 턱이 있다.
배를 쟁기삼아 깔때기 모양의 굴(깊이가 2.5~5㎝, 폭이 2.5~7.5㎝)을 파는데 파낸 흙은 머리에 얹어 굴 밖으로 내다 버린다. 그뒤 굴 속에 몸을 파묻고 턱만 내밀고 있다가 굴에 접근한 작은 곤충이 속으로 미끌어져 들어오면 그것을 잡는다.
개미귀신은 이 조난자의 내용물을 빨아먹고 그 껍질을 굴 밖으로 내던져버린다. 예를 들면 애알락명주잠자리와 같은 종류의 유충은 이런 굴을 파지 않고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먹이가 될 동물이 지나가면 잡아 먹는다. 이렇게 얼마간 먹고 자란 유충은 모래와 가늘게 뽑은 명주실로 고치를 만들고 여기에서 성적으로 성숙한 성충으로 나오게 된다.
성충은 잘 날지 못하며 곤봉 모양의 비교적 작은 촉각을 지닌다. 4개의 좁고 섬세한 날개에는 그물눈 모양으로 시맥이 빽빽하게 분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갈색이나 검은색의 무늬가 있다. 성충은 먹지 않으므로 유충 때 성충 몫까지 충분히 먹어 두어야 한다.
애명주잠자리는 기록된 65종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종으로, 북아메리카와 유럽(영국은 제외)에 분포하며 늦여름에 성숙한다. 미국에서는 개미귀신을 흔히 'doodlebug'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