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

J에게(7) -남원에 와서

소순희 2005. 12. 29. 00:37

 

J.

미명의 겨울속으로 고즈넉히 아침 기운에 싸인 마을을 밀어내며 전라선 첫 기차는 빨려들듯

벌판을 달려갑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집들이 겨울 나무아래 나직이 엎드려 있는 남녘의

이른 아침풍경은 참으로 고요합니다.

강에선 허옇게 물 안개가 피어오르고 꽁지 짧은 새 한마리가 빠르게 사라지는 이 겨울은

또 다른 의미로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습니다.

 

 

12월 중순, 삼남에 수십 년 만에 내린 폭설로 가옥이며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내려

정성들인 한 해의 농사가 한갓 바람처럼 소멸 되어버린 이 겨울에 농부의

마음까지 무너져 망연자실 하던 그 얼굴들이 오버랩되어 창 밖의 아름다운 풍경보다

잠시 마음이 무겁습니다. 내 몸 하나 편하면 타인의 아픔은 작게느껴지는 법,하지만

이 땅의 농부들의 자식들이라면 속이 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앞에 겸허한 농부들은 다시 일어서서 이 땅의 온기를 되 찾을것임을 확신합니다.

 

 

J.

그림 그리는 일이 직업이 되어버린 지금에 와서 그리 큰 천재지변이 아니고서야 더 즐거워해야

하는 이 아이니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도 조심스럽습니다.

눈부신 순백의 세계에 한 줄기 첫 발자국을 남기며 자연을 재 해석하며 마음으로 옮겨보는 작업 또한 매력있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겨울이 화가들에겐 좋은 한 철 인지도 모릅니다.

 

 

 

예전 향교동에서 북부 신정동으로 옮겨간 남원역사앞 겨울, 오전 11시 7분 며칠전에 내린 눈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겨울 여행객들의 발자국이 찍혔을 역광장의 눈이

다져져있습니다. 돌아오고 떠나는 이의 뒷 모습이 그리운 고향에 왔습니다.

남원 산성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솟아있습니다. 학창시절엔 그리도 높고 커 보이더니 작게만 느껴짐은 마음이 커진 까닭일까요?

남원시청 초대개인전 개막식에 참석했다 오늘 다시 귀경해야하는 분주한 시간입니다.

멀리 희미한 지리산 자락을 눈 앞에 끌어들입니다.

 

                                                          그리운이여 안녕    2005.12.28 소순희

'엽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J에게(9)- 겨울 정선에서  (0) 2006.02.06
J에게(8) -겨울비  (0) 2006.02.02
J에게(6)-11월의 밤  (0) 2005.11.26
J에게(5) -가을편지  (0) 2005.09.22
J에게(4) -여정  (0) 2005.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