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720m 마차령에서, 두고온 서울을 그리워하는 강원도 정선의 밤
외진 산골 굽이 길에서 가지런히 내려오는 눈을 맞아야 했습니다.
이미 온산을 다 덮고도 나무들의 가지마다 눈꽃이 핀 마지막 겨울 눈
오지게도 많이 내려와 한자 세치 눈 깊이를 걷자니 발을 옮겨 딛기가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감각을 잃어버린 발의 무게도 여기선 아무 의미가 없는 듯
그저 내딧는 걸로 겨울 산길의 보행은 힘겹지만 설원의 밤을
빼곡히 정리하며 연신 감탄과 흥분으로 하얀밤을 지나갑니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 한 소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밤 산을 울려
산짐승들을 놀라게 할 것 같습니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설경에 내맡긴 밤 눈 속 두시간은 내 생애에
이렇게 아름답고 많은 눈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은 날을 살아오며 나 자신에게 편리와 이익만을 추구했지 자연과 합일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불현듯 겸허해집니다.
가끔은 세파에 시달린 영육 간 곤비함을 세척 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탐욕이 작아지면 마음이 커지고 비우면 채워지는 순리를 알고자함이
자연속에 있다는 것에 퍽이나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다시 눈 헤집고 돌아 갈 도회지의 삶속으로 가면 몇 달 간은
이 약발로 즐겁게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운이여 안녕 2005.2.24
웃말가는길 소순희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