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하늘의 풍경 10호 2000년 소순희작>
풍경-(4)
여섯살 쯤 이었다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근경 속에 키 큰 미루나무와 전신주가 미끄러져 가고
논둑도 휘어지며 뒤로 흘러갔다 원경의 산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먼 마을의 집들은
자리를 틀어 앉으며 조금씩 멀어져갔다 나무도,사람도 선 채로 뒤로 밀려가며 삽시간에 변하는
그 순간들이 무슨 현상인지 몰랐다 그건 누구에게도 말 못 할 혁명이었다.
문득 거울을 본다 어린 여섯 살 적 눈매를 닮은 낯선 얼굴 하나 푸석한 머리카락을 덮어쓰고
웃고 있다 어디로 바삐 실려 가는지 언덕 밑으로 잦아드는 오금 저린 날들이 속절없이
휘어지며 돌아간다 백미러 속 사면의 예각은 소실점이 흔들리는 풍경을 그려내고
그 언저리 나무들도 연이어 뒤로 흘러간다
아아, 어쩌자고 쉼 없이 달려가는 이 길은 아득하기만 하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