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그, 눈 대지 -그, 눈 소순희아파트에 새로 나뭇잎이 피고부터까마귀 울음 잦아지고 내 잠도 헐값에 팔려나갔다충혈된 내 눈과 새벽 까마귀 울음의 간격은 보이지 않는 긴장이 고조되고저놈의 새, 저놈의 새를공중에 올려놓는다면차라리 내 잠도 허공에 떠 고요해지리몇 해 전 가버린 선배의 저승 안부마저 두근거리는 새벽녘오늘도 푸른 하늘은 길 하나 건너에 있다 시와 사랑 2024.07.27
불면 불면 소순희깊은 밤 하얀 알약 하나를 삼킨다육십을 넘기면서 늘어 나는 건색색의 알약이다온몸에 길을 내는 신경들이 느슨해지는적막한 시간도 이쯤에선 새롭다 우리나라 지도 전역을 클로즈업하면로드맵으로 깔린 길이 푸른 핏줄 같다그 어디쯤 막힌 길에서 돌아서야 하는등진 풍경들이,살아온 날의 뒷모습처럼 야위어 간다 가는 길 어디냐고 내가 내게 물을 때나는 또 어디에 머물러 스러지나불면의 밤을 날아오르는 끝 없는 생각들은 조급히 흩어지는 저수지의 새 떼처럼노을 속으로 추락한다 2024 시와 사랑 2024.07.11
오지를 찾아서 오지를 찾아서 소순희 화천 평화의 댐 지나 입소문 무성한 지도에도 없는 오지 찾아가다가 그만, 주저앉아 내 맘속에 지어 놓은 집 한 채 떠올렸어 어이없게도 어이없게도 그곳이 이상향이 되어 맴도는지 몰라 내친김에 며칠 만이라도 속세를 버린다면 널널한 마음속엔 뭐가 자랄까 가보지 못한 오지는 더 깊은 산중 처녀림에 몸 숨기고 그놈의 정인지 뭔지 끊을 수 없는 야속함만 남겨 둔 채 별 닮은 풀꽃과 눈 맞춤 하는데, 어디선가 적막한 풍경 속 뻐꾸기 니 마음 내려놓는 곳이 그곳이라고 온종일 목쉰 울음 울고 있네 .. 시와 사랑 2024.06.27
칼레의 시민 2017.1 소순희 1347년 도버해협 양쪽의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 년 전쟁 때다. 1년 가까이 영국의 공격을 막던 프랑스의 북부도시 칼레(현재-칼라이스/ 도버해협을 건너는 페리호)는 원병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백기를 들게 되었다.도시 전체가 불타고 모든 칼레의 시민이 도살되는 운명을 면하기 위해 칼레시의 항복 사절이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였다. 완강한 태도를 보이던 영국 왕이 항복의 조건을 내 놓았다. “칼레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동안의 어리석은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이 도시에서 가장 명망이 높은 대표적인 시민 6명을 골라 목에 교수형에 사용될 밧줄을 목에 걸고 맨발로 영국군 진영으로 가서 도시의 열쇠를 건넨 후 교.. 그림이야기(캔바스 위의 날들) 2024.06.15
술래 술래 소순희 길은 흩어지고 나는 향방부지로다 그랬었구나 너는, 꽃이 피고 짐도 모르게 어딘가로 숨어 버리고 모두 봄 속으로 뿔뿔이 흩어진 날에 나만 술래 되어 맴도는 마당귀 초저녁 별들이 피어나도 꼭꼭 숨은 너는 봄이 다 가도록 나타나지 않는구나 2019 그림이야기(캔바스 위의 날들) 2024.06.07
산티아고 산티아고 소순희 별빛 들판을 걷는 순례자여 성 야고보의 길을 따라 그대 발길 평화로워 지는 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구나 며칠째 비워 둔 집에 우편물이 쌓이고 온종일 햇볕만 놀다 갔는지 측백나무잎 반짝인다 발자국 쌓인 흙길은 언덕을 끌어가느라 숨 가쁘게 밀밭 사이를 가로지른다 유월의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볕 아래 포도꽃 향기 출렁이자 힘겹던 마음의 짐도 살가워지고, 가는 길 외롭지 않겠네 걷고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 야위고 힘없는 것들에 대해 나란히 어깨를 겯는 침묵의 일정은 마음 밖 일들까지 소상히 기록하네 또 하루해는.. 시와 사랑 2024.05.25
소쩍새 소쩍새 소순희아가, 소쩍새 울어 쌓는 밤이면왜이리 서글퍼 진다냐배고픈 시절 징그러운 세상 살았다느그덜 보며 그럭저럭지내온 세월이 참말로덧없이 흘러 부렀다밤내 울던 소쩍새 마냥보릿고개 넘으며남몰래 울기도 많이 했제어쩌겄냐 인제는 이 에미도소쩍새마냥 잠도 오지 않고쓰잘데기 없는 지나간 세월생각한들 뭣한다냐참말로, 잠깐만에 퍼뜩내 머리에 서리가 와 부렀다잉 2011오래 전 어머니와 통화 중 딱 한 번 푸념처럼되네던 어머니 말씀~~~이젠 그 목소리 조차 들을 수 없다. 시와 사랑 2024.05.19
살구나무에 대하여 살구나무에 대하여 지난여름 아파트 화단에 잘 익어 떨어진 살구를 밟고 지나간 곳에단단한 씨만 튀어나와 있어 아침 산책길에 주워서 운동기구가 설치된 소공원 구석에 묻어 두었다.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한 늦가을부터 겨울이 다 가도록 한 번도 그곳에 산책을 하지 않았다.매화나무가 꽃망울을 터드리는 봄에 다시 그곳에 나가 가벼운 운동도 하고 꽃눈이 맺힌 나무들을 보며 안양천 길을 산책하다 문득 생각 난 장소에 가 보니 한동안 잊고 있었던 묻어둔 살구씨에서 싹이 돋았다.이른 봄비가 대지를 몇 번 적신 후, 작은 바위 앞에 뾰롯이 솟아난 살구나무를 본 건 봄날의 환희였다. 그랬었구나! 차가운 땅속에서 깨어날 .. 추억그리고 현실 2024.05.04
가시고기 가시고기 소순희 한동안 잊고 지냈던,잊어버리자고 애썼던 눈먼 발끝 쯤에서장다리 밭 봄날을 홀연히 등 뒤에 감춘 그 하루남은 생마저 아득해져서나풀거리는 나비 떼 속에 앉아이제야 생각나는 봄볕에 젖는 이름 하나불러 보았습니다조랑조랑 슬어 놓은 새끼들 제 갈 길 가고심중에는 몽유병 같은 뭉근한 염려만 남아제 몸 삭아가는 걸 알면서 한사코 제 몸에 삭여 넣는 그리운 자식들의 가시,찔리고 아파도 머릴 맞댄 허공에 조아리는허무한 한 생이 빈 껍질로 남았습니다. 2024 민물고기인 가시고기 수컷은 부.. 시와 사랑 2024.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