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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길 어머니

코스모스 길 어머니 소순희 어느 하룬들 어머니 잊힌 날 있을까! 추석 무렵이면 더욱 생각나는 어머니, 내겐 평생 지울 수 없는 슬픈 추억 하나 있다. 코스모스 핀 길을 보면 더욱 그렇다. 농투성이 되지 말라고 등 떠밀던 봄날, 먼지일던 길로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우두커니 서서 손 흔들던 46세 어머니. 나는 그렇게 어머니 곁을 떠나 열두 갈래로 뻗은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문득 4학년 가을, 논에서 아부지일을 돕다 퍼질러 앉아 바라 본 고남산. 그 산줄기로 흘러내린 가을빛이 뒷골 밤나무 숲을 노랗게 물들이며 비단결처럼 고울 때 나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 하나를 새겼다. 몇 해가 흘렀다. 차츰 절망이라는 것도 살이 되어 가는 어떤 개인적인 사유의 깊이를 속앓이로 감내해 나갔다. 그..

카테고리 없음 2023.10.05

도깨비바늘

도깨비바늘 소순희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다 바짓가랑이에 붙어 집까지 따라온 도깨비바늘의 검은 눈을 보았다 올곧게도 바늘을 꽂아 동행하며 어딘가로 멀리 떠나 일가를 이루고 싶은 한해살이풀로 긴 여름 견뎌오며 품어 온 새끼들 오죽하면 타인의 몸 빌려 퍼뜨리고 싶었으랴 이 악문 씨앗들 뜯어내며 눈물이나 울타리 가에 고이 묻어주었다 아버지도 청천 하늘 우러러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곳에 우리를 슬어놓고 떠나셨다 속수무책이던 세월에 도깨비바늘처럼 붙어산 어린것들의 귀에 징그러운 바람 소리 얼마였더냐 그래도 몸 부려 동행하는 오늘이 희망이라고 아무도 모르게 속 깊이 묻어주었다 2013 (월간 모던포엠 2014, 3월호 수록) 도깨비바늘 Spanish needle 국화과에 속하는 일년생초. 인도와 중국, 말레이시아 등이..

시와 사랑 2023.10.04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 소순희 벌레 소리 들리느냐고 재차 묻는 그에게 나는 입술에 손가락 세워 조용히 하라는 부호 하나를 던졌다 자연의 음률을 숨죽여 듣는 불협화음에도 질서가 있는 저 무량한 이치를 어느 별 아래서 느낄 것인가! 뉴우침 없어도 스스로 고백하는 이 허다한 죄의 파멸 어느 가을밤 벌레 소리 들릴 때마다 프리다 칼로의* 직소퍼즐 같은 꿰맨 가슴 속으로 가을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3 *프리다 칼로~멕시코 국민 여류화가 그녀의 생은 고통을 통과한 삶의 의지와 강렬한 내면의 존재감을 그려냈다.

시와 사랑 2023.09.24

그 누님에 대한 추억과 회한

그 누님에 대한 추억과 회한 소순희 그 누님이 실성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은 아마 가을걷이 후의 빈 들판이 늘어 갈 즈음으로 기억한다. 실지로 누님은 혼잣말로 뭔가를 중얼거리며 다녔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퀭한 눈이 깊었다. 초등학교 1~2학년인 아이들의 입에선 거침없이 미친년이라는 욕설과 함께 그 누님이 가는 길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사람을 포진한 채 놀리며 흙이 붙은 벼 포기를 던지고 작은 돌을 집어 위협하곤 했다. 그게,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악함이 발동하여 약자를 괴롭히는 잔인성으로 표출되는 일종의 군중심리로 작용한 본질적 죄성이리라.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같은 맘을 지닌 이유에서 누가 선한 사람으로 남아 과연 그 어린 녀석들의 행위에 침을 뱉겠는가. 나도 그 못 된 대열에 합류한 ..

내 사랑

영화 후기 제작 : 2016 장르 : 드라마.멜로 국가 : 아일랜드.캐나다 감독 : 에이슬링 월시 주연 : 에단호크.샐리 호킨스 러닝타임 : 115분 신은 인간에게 공평을 허락하셨다. 어떤 처지와 환경에서도 각자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을 주신다. 영화 내 사랑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두 사람의 인연과 그들이 살아가며 겪는 갈등과 시련, 슬픔을 딛고 사랑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선하고 아름다운 한 가정의 축적된 행복을 볼 수 있다. 장애는 불편할 뿐 인간의 영혼까지 장애를 겪는 건 아니다. 장애와 관절염을 앓으며 순수한 그림을 그리는 캐나다 화가 {모드 루이스와 그의 남편 에버렛 루이스} 실존 부부의 삶과 일을 각색하여 영화화한 것으로 충분한 감정 이입의 선에서 쉬이 눈을 거둘 수 없다..

영화 후기 2023.09.15

도봉의 가을

도봉에서 소순희 가을볕에 도봉의 이마가 희다 어쩌자고 산록은 다시 붉어 눈시울 적셔오느냐 말 없이 지워지는 산 그림자 속 입속말로 불러보는 단박에 그리워지는 사람아 나 도봉에서 서룬 가을을 맞노니 이 계절도 저물면 긴 동면의 고른 숨소리조차 설원에 잠기리 도처에서 산 메아리로 불러보는 예쁜 이름 지닌 사람아 속절없이 지는 사랑이 저 가을 같을까. 2009 이처럼 아름다운 산을 끼고 있는 거대 도시가 몇이나 될까? 근교에 도시의 허파처럼 놓인 북한산 국립공원에 속한 서울 북단에 위치한 높이 740.2m 자운봉과 만장봉,선인봉,주봉.오봉등을 지니고 있는 도봉을 보노라면 맘이 설렌다. 좋은 사람들과 산행하며 사계를 호흡하는 이 충만한 축복은 내 주님께서 내리신 은총이다. 다락능선으로 오르다보면 펼쳐진 화강암 ..

세한도(歲寒圖)

소순희작/시간에 기대어/2021 세한도~추사 김정희가 제주에 유배생활 할 때 제자 이상적에게 선물로 그려준 문인화로 국보 제 180호이다. 세한도(歲寒圖) 소순희 이제는 보내마 속 깊이 간직한 그때 너를 잡아 둘 여력도, 그리워하며 삭아가는 숭숭 뚫린 마음 자락도 매어둘 한 그루 나무도 없다 사는 게 그런 것이어서 나이 든 송백(松柏) 무욕의 그늘로 한갓 지나는 차운 바람 줄기가 오히려 무상하노니 홀로 묻는 빈 무덤 자리도 족함이거늘 유배의 한 숨 밖으로 이제는 보내줄 너만이 뚜렷이 남는 허리 휜 긴 하루가 있을 뿐이다 2021

시와 사랑 2023.08.25

배롱나무

배롱나무 소순희 사랑이여 무슨 기별 있어 기다림 남은 여름을 타오르느냐 붉은 입술은 흰 목질부에 기대어 산 죄였더니 얼마나 그리우면 눈물 바람 같은 꽃 백일을 피워내고 한목숨 지상에 훌훌 내맡기느냐 그렇게 살아온 날이 아직도 그리움이라면 영영 기다리겠네 사랑이여 2014 J에게(55)-병산서원에서 J,산다는 것이 팍팍해지거나 외로워지면 어딘가로 훌쩍 길 떠나 마음의 눈으로 풍경을 바라보십시오. 꽃다운 젊은날도 세월 앞에 숙연 해지고 무심한 것들이 오히려 정다워지는 산자락 양지녘 어느분의 유택에 가만히 앉아 말 없음의 이유로 깊어지는 중년의 내면을 성찰합니다. 3월 2일 안동 풍천면 병산서원에 왔습니다. 하회 마을을 나와 자동차 두 대가 간신히 비껴 서는 비포장 도로를 십리남짓 달리면 낙동강 상류가 태극 ..

시와 사랑 2023.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