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뒤돌아 보는 삶도 숨 가쁜 시대의 쉼을 얻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주어진 한 생이라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하라는 공부는 뒷전이고
자연 속에 묻혀 살다시피한 어린 시절이 내겐 더 귀중한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36년 전 산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고2 때 몇몇 친구들과 지리산에 오르게 됩니다.
뱀사골 계곡을 타고 오르다 길을 잃어버리고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우거진 전나무숲과
산대나무 숲을 헤치며 지쳐가고 있을 무렵 하늘만 보고 가면 능선이 나올 거란 기대로 몇 시간을
그렇게 헤매다 어둠이 내리는 능선을 찾아 겨우 지친 몸을 부렸습니다.
새벽 세시경 산 골짜기를 울리는 낮고 깊은 산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울음에 잠에서 깨어
손도끼와 대검을 빼어들고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시계를 보았습니다.
산은 살아 있고 우리는 그곳에 끼어든 작은 존재로 숨 죽이며 지샌 그 밤이
경이로운 추억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언뜻 구름을 헤친 별들의 찬란함을 잊을 수 없고,
아침에 발아래 펼쳐진 운해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세계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토끼봉을 지나 반야봉에 이르고 임걸령을 넘으며 첩첩산중의 백두대간 긴 허리를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노고단의 연추리꽃도 화엄사9Km의 지루한 계곡도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낮 뜨거운 일이지만 그때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키타 치며 고고춤을 춰대던
그 무지막지한 한 시절도 이젠 추억속 앨범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어느날 앨범을 보다 추억에 잠겨 미소를 지어봅니다.
그리운이여 안녕~ 2011.6
<지리산 임걸령에서 1975>
<반야봉이 보이는 풍경 1975>
<지리산 토끼봉에서 1975년>
<지리산 뱀사골에서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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