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蠶室)
소순희
유월 잠실에 가면
가랑비 소리가 들린다
어린 누에들이 갉아먹는
푸른 뽕잎의 잎맥마다
빗소리가 숨어있다
혼곤히 잠을 끌어내는
가녀린 입속말처럼 사각거리는
밥 먹는 예쁜 소리
한살이의 중생을 위한 변주로
어린 누에들은 풋것에 매달려
명주실 집을 꿈꾼다
유월엔 누에 치는
잠실에 가서
귀 열고
고운 빗소리 들리나 보라
⊙ 어린 시절 누에 치는 잠실에 가보면 수천 마리의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 밥 먹는 소리는 속살거리며
내리는 가랑비 소리처럼 귓전을 맴돌았다.
누에 치는 잠실에 가보지 않는 사람은 그 소리를 모를 것이다.
알에서 애벌레로 깨어나고 밥 먹고 자기를 네 번 한 후
섶에 올라 명주실 을 뽑아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된다 .
그리고 고치를 뚫고 나온 나방은 다시 알을 슬어 놓는다.
이것이 누에의 한살이다.
잠실은 누에와 얽힌 서울의 한 행정구역이지만
여기서 잠실은 누에를 치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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