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동 계곡에서
소순희
나, 여기오면
가슴에 천불이 난다
꼭 한 번은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저 맑은
저 붉은 단풍 아래
묻혀있는 千佛洞 계곡
당신은 끝내 올 수도 없는
내가 무작정 갈 수도 없는
끊긴 길이라
나 여기 죽어도
서럽지 않을 가을 천불동에 들면
곰삭은 색깔마다
당신 웃음소리 저렇게 피는데
사랑했노라고 사랑한다고
짧은 수화로 보내는 기막힌 연서를
아직도 기별 없는 천불동에서
한동안 물소리로 달래며
이 예쁜 곳 안기지 못한 나는
이적지 미치도록
가슴에 천불이 난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