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예년보다 더디게 4월 중순께부터 관악산 기슭의 과수원에선 막 꽃눈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올해는 길한 쌍 춘절이라 하여 유난히 결혼예식이 많은 걸 볼 수 있습니다.
아침 빛이 길게 그림자를 만드는 밤나무 그루 사이에 복사꽃이 수줍은 듯 그 빛깔을 숨기며
다소곳이 제 몸을 단장 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 이곳 눈 덮인 과수원 비탈에 선 나무들과 과수원집을 그릴 때 눈부시게 반사되던
설광 외엔 죽은 땅 깉았던 그 설원과는 달리 새봄의 과수원에선
나뭇잎 피워내는 소리가 수런수런 들리는 듯합니다.
5월 아침 관악산 기슭을 산책하며 산속으로 훤하게 뚫린 길들이 희끗희끗 지워져
있음을 봅니다. 그만큼 나무들이 푸른 새잎을 피워낸 까닭이겠죠.
언제부턴가 홀로 즐겨 찾는 오솔길이 남몰래 구축한 평안의 적소인지도 모르게
발길이 머무는 뜻을 알 것 같습니다.
J.
이 아침엔 도덕의 이상을 달성하려는 금욕주의가 아니더라도 조금씩은 현실과 동떨어진
감성이 앞섬을 뉘우침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살면서 모든 사물에 대한 편견이나 애증 같은 죄의 속성을 가진 근본적 마음을
비워내고 싶은 건 오월이라는 새 희망의 계절 탓도 없진 않습니다.
안과 밖을 경계로 둘러친 울타리마저 이때 처럼 예쁘게 자연과 하나 되는 모양새들이
누구와의 차단을 의미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인내하여 피워낸 꽃이며 잎새들일진대 하물며 합리적 사고를 한 인간이
높은 이중의 벽을 쌓는 수고를 해서 얻어지는 것이 뭐가 있겠느냐고 자신에게 묻습니다.
서럽도록 찬란한 봄입니다. 이 봄엔 허물어야할 것들이 많아 더 뉘우침이 깊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봄을 마음 한 자리에 차곡차곡 정리해 두고 푸른 꿈이나 꾸어야 겠습니다.
그리운이여 안녕2006. 5.2.소순희
부림마을 과수원에서2006.5
과천에서2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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