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가난한 자에게도
동일한 은총은 안식이다
겨울 볕 날개를 접는 저녁
따순 밥 한 그릇과
가족의 하루가 집약되는
집으로 가는 길
알 전구 희미한 외등마저 고맙구나
지친 어깨를 겯는
느린 바람결이
겨울답지 않게 포근할 때는
한 잔 술의 취기도
행복이었다
언덕을 넘는 두 줄 전선 위
음표로 걸린 지다만 나뭇잎
음정 틀린 유행가 가락도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내일 다시
노동의 새벽을 나설 수 있는
역순의 발걸음 골라 딛는
중년의 가장이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성근 별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소순희
<창포동인제3집수록>
<자화상/1991/소순희/6호/Oil on Canv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