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상처 입은 새를 쫓아다니다 길을 잃었다.
그리고 울먹이는 마음으로 산 속을 헤매고 있을 때
멀리 뉘엿뉘엿 지는 해의 연약한 빛과 역광(逆光)으로 인한
하얀 냇물 줄기와 억새꽃의 투명한 흰 빛을 처음으로 보았다.
며칠을 이마에서 열이 나고 마음은 한없이 무너져 내려 꿈속 인 것처럼
까무룩 잠속에 떨어지면 누님의 노랫소리가 아득히 들려오곤 했다.
그 후 나는 밤나무 밑에서 죽은 새의 깃털을 만지며
비로소 색채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밟고 있는 땅 색깔이며 나무그늘이 내린 흙 색깔, 먼 산 빛, 가을 물이 들어가는
고남산 자락의 음영 깊은 골짜기와 하늘을 떠가는 구름조각들
이 모든 자연에로 눈을 뜨는 시기부터 표현의 일기가 시작되었고
그 때부터 바람 소리며 물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열어 두었다.
그것이 어떻든 자연에 귀의한 나의 20대 봄이었다.
1983.소순희
<성북동 가는 길/ 30P /대한민국회화제출품작/ 소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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