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여기 앉으세요."
"아. 아니야. 괜찮아. 학생 앉아요."
"아니에요. 앉으세요.
여대생으로 보이는 학생에게 고맙다는 눈인사 한번 건네고 앉으신 60대 후반 쯤 되어 보이는 노인.
참 정겨운 모습이었다.
나는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앞부분 자리에서 중년의 사내가 일어났고 그 노인은 좀 전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해준 그 여학생에게
"학생 자리가 났으니 여기 앉아요."
하면서 앞자리로 옮겨갔다. 그런데... 아뿔사! 자리에서 일어났던 중년 사내는 내리려던 것이 아니었고,
버스 정류장 표기문을 보려고 일어났던 것이었다. 그 사내는 노인에게 다가가 대뜸
"정류장 표 좀 보고 있는데 앉기는,씨팔..."
노인은 아무 말이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상황에서 좀 전의 위치로 돌아갈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니기미 씨팔...나도 피곤해 이 양반아...나도 마흔 여덟이야..."
"......."
"왜 여기 와서 앉는거야. 하루 노동해서 사만 삼천 원이야. 차비 빼고 나면...씨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인지 사회에 대한 분노인지 모를 혈기를 부리고 있었다.
급기야는 육두문자 쓴 언행이 일방적으로 쏟아지고, 뭐라고 말 대꾸라도 하면 칠 기세다.
노인은, "아..이 젊은이 너무하네."
하면서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누구도 말리거나 따지는 사람이 없었다. 하기야 남 일에 끼여 들면
피곤하다는 생각이 만연한 터라 그저 무관심한 현대인의 에고이스트적 사고로 서늘한 분위기다.
아니면 버스 안 모든 사람이 은근히 그 싸움을 즐겼는지 모른다.
나도 많은 사람들처럼 관망만 하고 있었던 것이 후회막급이다. 바보...
욕 짓거리를 해대며 붉으락 푸르락한 얼굴을 한 채 그 중년 사내가 내리고
노인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며 가고 있었다.
얼마나 속상하고 분했을까! 그분도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이었다면 이렇게 억울하게 당하진 않았을것이다
그리고 그 남자도 함부로 대하진 않았을 것이고...
나는 젊은 그 남자 대신 사과하고 속상한 맘 풀어드리고 싶었는데... 그것마저 하지 못 한 채 내리고 말았다.
그 밤내 아무말도 못하고 관망만한 나 자신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맘 켕기는 밤이다.
2001/소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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