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해나 정선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닷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밭의 호젓한 언덕 아래로 보이는 따뜻한 마을과,강원의 골깊은 산아래 나지막이 엎드린 산가의 소박함 때문이다. 강릉행 밤 기차의 한 줄기 빛에 11월의 어둠은 길을 터 준다. 먼 촌락의 불빛이 하나 둘 어둠에 묻히면 긴 외마디 기적도 울리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이라곤 산 골골을 휘어져 돌아가는 늙은 자벌레의 몸통처럼 길게 늘어진 열차의 느린 행보뿐이다. 희미한 실내등과 맞물리는 청남빛 하늘의 부우연 빛깔 아래 그렇게 새벽은 오는 것이고 사람들은 또 하루를 맞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철거덕 거리는 쇠바퀴 소리와 선로의 마찰음의 가수면 상태의 여행객에겐 그나마도 자연 속으로 떠남이라 정겹다. 증산역에서 정선 구절리행으로 바꿔 타는 새벽의 찬 바람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