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 70

J에게(55)-병산서원에서

J,산다는 것이 팍팍해지거나 외로워지면 어딘가로 훌쩍 길 떠나 마음의 눈으로 풍경을 바라보십시오. 꽃다운 젊은날도 세월앞에 숙연해지고 무심한 것들이 오히려 정다워지는 산자락 양지녘 어느분의 유택에 가만히 앉아 말 없음의 이유로 깊어지는 중년의 내면을 성찰합니다. 3월 2일 안동 풍천면 병산서원에 왔습니다. 하회마을을 나와 자동차 두 대가 간신히 비껴 서는 비포장 도로를 십리남짓 달리면 낙동강 상류가 태극문양으로 휘돌아가고 그리 높지 않은 화산이라는 산자락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병산서원이 있습니다. 낙동강을 안고 펼쳐진 앞산이 병풍 같다고해서 병산이란 이름을 붙였다고합니다. 선인들의 여유와 고요함에 내가 낮아지는 일종의 최면으로 자기 절제정신을 마음에 각인 시킵니다. 유학의 논리로 접근하자면 사물에 대해 자..

엽서 2013.03.08

J에게(51)-장릉(莊陵)에서

J, 소나기가 훑고 지나간 검푸른 수풀은 이미 성하 임을 말해줍니다. 8월 초 나는 숙연한 마음으로 영월 장릉에 듭니다. 나고 죽는 게 인간사 한 단면이지만 세상의 물욕에 때 이른 목숨을 잃어야하는 애달픈 왕가의 법을 헤아릴 길 없습니다. 조선왕조 6대 임금으로 12세 어린 나이에 왕위에 등극하지만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으로 국권이 장악되고 왕위를 내어준 비운의 왕 단종을, 세조 2년 집현전학사 성삼문 박팽년 등 상왕 복위를 꾀하는 사건으로 참형되고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땅 청령포에 유배됩니다. 여섯째 삼촌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계책이 발각되어 노산군에서 다시 폐서인으로 강등되는 불운을 겪으며 그해 10월24일 마침내 17 세에 사약을 진어한 이승의 마지막 날을 의연히 받아들입니다. 운명이라고 치..

엽서 2011.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