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그 사랑/4호/소순희작/2015>
겨울비-5
소순희
돌아갈 곳도 없다
두려울 것 하나 없는
이 나이 먹고
빈 길에서
오는 비 맞으며
고향의 푸른 보리밭에 내릴
잠언인지
자꾸만
자꾸만 귀를 기울인다
겨울비-6
소순희
괜찮아요
더 머물다 가지 않아도
계절의 잠 위에 내리는
그대 발걸음 소리
겨울비-1
소순희
너를 지우는 동안
몇 해의 겨울
몇 해의 겨울비
시린 내 눈가를 적신다
못 잊는다고
겨울 한 모퉁이를
서성이는
겨울비
눈물 같은 겨울비
겨울비-7
소순희
여기부터는 모자를 벗어라
더 늦기 전에 지난 모든 기억을
소멸하라
고요의 땅에 엎드린 지금은
처음 자리로 돌아가는
경건의 의식
몸 둘 바 모르는 평생 버릇도
버려야 할 낡은 것이로되
잠식당한 청춘의 일부를 오늘
되돌리노니
겨울비에 씻긴 맑은 심중에서
새로 읽는 경전의 잠언서
그 아래 다시 눈 뜨는 시간
차운 머리 맡에 비, 겨울비
겨울비-4
소순희
그립다고
그립다고
도원동 고개를 넘는
초로에
푸른 사념의
작은 새
날개 죽지도 젖어
흰 머리도 젖어
그립다고
그립다고
겨울 도원동
비 내리는
고개를 넘으며
겨울비 3
소순희
빈 까치집 달랑
새끼 쳐 떠난 후
추적추적 비를 맞는다
쓸쓸히 허공에 걸린
붉은감 바라보다
빈집에 남은
살비듬 뜬금없이 왜 떠오를까
이 저녁 무렵 저들
어디로 뿔뿔이 흩어져
찬비를 긋느냐
풍문으로 듣는
너의 소식
겨울나무 같은
손 마디가 움켜잡는 추억
가고 없는데
옛적부터 있었던
감나무길 가며
나 겨울비에 젖는다
겨울비-2
누군가 떠나는 저녁 무렵
우산도 없는 뒷모습을 짚어가며
우요일의 행간을 적신다
가지 마라
겨울 산다화 찬비에 지는
남녘도 찰 터인데
더러는 이별의 예고도 없이
하늘로 가고
남은 자는
푸른 대숲 길 걸으며
입춘 지난겨울 끝에
시린 비를 맞는다
꽃은 다시 별일 아닌 듯 피어
사람 모으는 봄, 곧 온다
가지마라 빗속으로
산다화 뚝뚝 져간다고
소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