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랑

산은 늘

소순희 2024. 1. 2. 23:40

                                                                   <앞산(비봉산)에서 본 관악.12,25>

    

 

       산은 늘

                      소순희

 

저녁 안개로 지워진

산이 드러나자, 눈이 내렸다

검게 웅크린 산은

평소보다 두어 발 뒤로 물러앉아

저녁 눈을 다 받았다

나도 머리에 눈을 이고 한참을 

산 아래 서서 고요를 밀어내자

한 겹 어둠이 출렁였다

저 무주공산에 내려앉는 저녁 눈

흰 뼛속 깊이 나무를 길러낸,

삭신 쑤시는 골짜기마다

작은 짐승들 길러낸, 고립의 날을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먼발치에 점등된 온기를

가슴으로 받는 겨울 저녁

사랑은 늘 거기 있다고

허접한 모든 것을 덮으며 눈은

발자국마져 다 지우고 있었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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