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랑

조서

소순희 2024. 1. 25. 23:28

 

                 <볕드는 집/20호/소순희작/대한민국회화제 출품작>

 

 

       조서(弔書)

                              소순희

 

등불을 끄고 누우니

마당에 찬 서리 밝다

감나무 그림자 쓸고 가는 흰 달빛 속 

뒤꼍 대숲 바람 소리 스산하다

늦가을 밤은 이런 풍경들로 풍화하는

여린 목숨에 대한 예의로

스러져 대궁만 남은

지난 여름의 풀들에게,

알 슬어 놓고 죽은 곤충들에게,

찬 기운에 밀려난 계절의 죽음 위에

그대들 잘 가라고

달빛 아래서 조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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