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랑

제재소에서

소순희 2024. 1. 31. 20:33

           

 

          제재소에서

 

                                           소순희

 

악산 능선 같은 회전 톱날에서

그가 켠 나무 향이 났다

보지 않고도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있는 건

등고선처럼 그어진 속살에서  

고유의 화인으로 내보내는 향 때문이다

 

무엇이 되어 만날지 모르는 나무는

절명의 순간을 그 산, 그 흙, 닮은 근원으로 

회귀하는 맞물린 결집이다

쌓인 톱밥만큼 눕는 묵묵한 입 닫음도  

가장 아리게 해체된 마음자리다

어머님을 보내고 돌아오던 길엔 언제나

제재소 옆길로 돌아왔다

등 뒤에 숨긴 문란한 생각이 행여 나를 칠까

도시 외곽 제재소 톱 소리로 잘라내며 걷노니

나무 향이 와락 나를 끌어안았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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