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수학 여행

소순희 2022. 7. 20. 22:18
           
       
                                                                                    <가을 바다/소순희작/유화 30호>

                  수학 여행
                               

                       
                                              소순희


 나는 아직 경주에 가보지 못했다.
천년고도 경주를 떠올리는 건 여행의 종착지라고 마음에 새겨둔 뜻도 있거니와
진정으로 마음의 눈이 뜨일 때 가 보아야겠다는 신념도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열네 살 중학교 일학년 가을 학교에선 수학 여행을 계획하고 한 달 전부터 담임 김상수 선생님께서
종례 시간이면 누누이 말씀 하셨다.
기억으론 수학여행비가 3만 원이었던 거로 알고 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 혼자서 자취를 시작했고 토요일엔 집으로 가서 일손을 돕고
일요일 저녁 막차로 쌀과 김치를 가지고 자취방으로 가곤 했다.
몇 번이고 수학 여행비를 어머니께 이야기할까 망설이다 못하고 말았다.
아버지가 가신지 약 일 년이 되고 일찍 집안 사정을 아는 터라 끝내 그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어쩌면 그 부분에선 일찍이 철이 든 까닭이었을까! 물론 이야기 했다면 어떻게든 마련해주셨을 것인데 말이다.


"수학여행도 수업에 연장이다. 우리 반에서 못 가는 사람은 3명이다.
못 가는 사람은 학교에 나와서 남은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총 8반이니까 한 반에 3~4명 30여 명 된다.
교정에서 보면 가파른 철길로 디젤기관의 열차가 그르렁대며 검은 연기를 뿜고 힘겹게 오르곤 했다.


내일이면 학교 운동장으로 대형버스가 들이닥치고 급우들은 2박 3일간의 여행길에 오른다.
그런데 하루 먼저 여행길에 오른 남원 국민학교 어린이들이 타고 있던 비둘기호(완행) 열차가 남원역에서 
북쪽 언덕으로 향하던 중 출력 부족으로 후진하며 역에 정차해 있던 유조 열차와 충돌해 큰 사고를 내고 말았다. 
1971년 10월 13일 남원에서 군산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어린이 19명 포함 총20명이 숨지고 48명이
중경상을 입은 끔찍한 사고였다.
나뭇잎이 붉게 물들어 가는 예쁜 계절의 중심에서 어린 마음에 여행이라는 것이 얼마나 맘 설렌 일 이었을까!
그 순수와 천진난만한 어린 영혼들이 51년 전 이니까 살아 있다면 60대가 된 그들, 아득히도 먼 세월 속에 잠들어 있다.


그 사고로 당시 전국 학교 수학 여행은 불허 한다는 문교부 장관 령의 지시가 내려졌고 우리 학교도 예외는 아니 었다.
이제는 잊혀질만한데도 소상히도 생각나는 그해 가을이 그림처럼 떠 올라 나도 언젠가는 천년 역사 경주에가서
교과서나 사진이나 글에서 보아온 경주의 햇볕과 바람을, 인심을, 불국사,왕릉,첨성대,석굴암,안압지,계림,
남산의 바위에 부조(릴리프)와 음각으로 새겨진 예술혼이 깃든 마애불을 보고 싶다.
경주에 거주한 화가 지인께서 꼭 한번 오라고 하지만 아직 마음이 내키지 않는 까닭은 마음이 눈이 뜨이지 않은 것일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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