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안주 술안주 3월 저녁에 겨울 웅크린 어깨를 펴며 시커먼 놈 몇이 모여 지독한 겨울을 이야기했다 초저녁 돋던 별 하나도 숨어버리고 살 태우는 냄새 불빛아래 가득하다 몇 점의 삼겹살에 쓴 소주잔을 부딪히며 욕설과 눈물 같은 시어를 내뱉는 그대들의 간은 부어있다 사는 일 그런가, 오죽하.. 시와 사랑 2012.03.18
공짜 공짜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누구에게나 값없이 주신다 햇볕과 바람과 비와 눈 그리고 공기 그거 가지려고 나 바동거려 본 적 없다 때에 따라 주시고 필요한 만큼 가져다 썻다 소순희 <천리포 수목원에서2001/소순희> <안양천 야경/집에서/2001/소순희> <정선/2001>.. 시와 사랑 2012.03.06
추억-1 추억-1 고향 집 대숲은 해마다 비비새 떼를 키워 냈었지 도지는 몸살로 깊은 잠 못 이룰 때 뒷문 밖으로 흘낏 쪽빛 하늘이 보이고 살구꽃이 어지럽게 부서지고 있었어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단발머리 가시내가 왔다 가고 또 왔다 가고 암고양이가 목청을 다듬는 텃밭 감나무 연한 그늘에 .. 시와 사랑 2012.02.19
내 하나님 내 하나님 눈뜨면 상천하지에 하나님 늘 부끄러워 숨어들지만 바라보면 또 새날 새 옷 날 어쩌라고 그 빛나는 요지부동의 눈으로 지키시어요 눈감아도 상천하지에 하나님 도망가서 살고 싶다고 그 앞 피해 가 보면 두개골을 이룬 스물세 개 뼈마디 사이로 고이는 눈물 아! 날 어쩌.. 시와 사랑 2011.12.16
거짓 사랑 거짓 사랑 성에 낀 유리창에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귀한 말을 써 보면서도 나는 마음속에 미워하는 사람 몇몇을 죽이고 있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더욱 싫었다 가을 꽃이 시들고도 오래도록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으로 남아 있었다 오장육부를 헤집는 쓰라린 미운 감정이 먼 발.. 시와 사랑 2011.11.26
내가 나에게 내가 나에게 햇살 고운 가을 하나쯤 마음에 숨겨 두고 살 일이다 철 늦은 쑥부쟁이 지상의 계절을 힘겹게 오르는 산길 하나쯤도 마음에 새겨 두고 살 일이다 세상의 저물녘에 내 안의 헛됨 가르며 산새가 날면 숨겨둔 뜻 풀어 비로소 마음 여는 이치 알겠거늘 덧없는 한 생을 지나며 천명(.. 시와 사랑 2011.10.19
어머니 어머니 소순희 병고를 겪는 어머니 앞에 새봄이 놓이고 겨우내 잠자던 씨앗들 눈 뜬다 평생 땅의 기운으로 사신 어머니 접힌 설움 마저 텃밭 담 그늘에 푸른 희망으로 가꾸시는데 나, 게으른 문명이나 뒤지고 있지 않은가 소순희/2011/봄 <대지-그,눈/소순희작/2010> 2012/3 시와 사랑 2011.08.30
틈 틈 보도블록 틈새에 씨앗 하나 바람에 날려 왔는지 앉은뱅이 풀 돋아나고 작은 꽃이 피었다 망중유한 바라보다 흠칫 놀란 틈이라는 비좁은 사이 다 갖춘 모양의 꽃 눈물겹다 틈새에서 이뤄지는 일 알 수 없는 신의 일 일진데 감히 비운(悲運)이라 말할 수 있으랴 어둠과 빛의 틈으로 생명.. 시와 사랑 2011.08.01
추억(2) 추억(2) 제사공장 담장에 기대어 초록별이 뜨는 밤을 기다려 주던 여우 같은 가시내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 남겨두고 총총히 사라진 갈래머리 위 남쪽 하늘 전갈 성좌를 그으며 별똥별이 지데 어린 날 한 마디 좋아한다는 말이 부끄럼으로 한세상 옮아가는 병인 양 뉘우침 없는 그리움이.. 시와 사랑 2011.07.24
송아지가죽 구두 송아지가죽 구두 초원은 태중에서도 푸른 희망이었지 그 큰 눈으로 맨 처음 세상 빛 보았을 때 느닷없이 받는 망치 세례로 사그리 무너지는 희망 어미젖 물어보지 못하고 양수에 젖은 몸 채 마르기도 전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는 아기 소여! 부드럽다는 이유로 너의 가죽을 벗겨 만든 구두.. 시와 사랑 2011.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