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랑 435

천불동 계곡에서

천불동 계곡에서 소순희 나, 여기오면 가슴에 천불이 난다 꼭 한 번은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저 맑은 저 붉은 단풍 아래 묻혀있는 千佛洞 계곡 당신은 끝내 올 수도 없는 내가 무작정 갈 수도 없는 끊긴 길이라 나 여기 죽어도 서럽지 않을 가을 천불동에 들면 곰삭은 색깔마다 당신 웃음소리 저렇게 피는데 사랑했노라고 사랑한다고 짧은 수화로 보내는 기막힌 연서를 아직도 기별 없는 천불동에서 한동안 물소리로 달래며 이 예쁜 곳 안기지 못한 나는 이적지 미치도록 가슴에 천불이 난다. 2017

시와 사랑 2020.10.20

다시,그 길

다시, 그 길 소순희 무심코 버린 길 하나 오늘 찾았습니다 마음에서 지워진 길이라 발자국마저 묻혀버린 몇 해의 길 위로 당신이 걷는다는 바람의 소식에 나는 잊힌 시간의 회로를 되짚어갑니다 다시, 그 길을 걸어야 할 이유를 당신이 오가는 길이기에 라고 적습니다 길은 언제나 거기 있었습니다 내가 지운 길옆 외로웠던 날을 계수하는 플라타너스의 흰 몸에 새겨진 흔적도 그대로 아물고 있었습니다

시와 사랑 2020.09.04

온수리 그녀

온수리 그녀 소순희 온수리의 아침을 닮은 그녀가 첫차에 아침을 싣고 왔지요 언뜻, 등 뒤에서 산나리꽃이 하늘거리다 사라진 꽃무늬 원피스 결에서 맑은 웃음소리가 톡톡 튀어나왔어요 온수리의 아침은 큰산 기침 소리로 깨어나고 눈고운 새들이 딛고 다닌 나뭇가지마다 꽃망울이 터지고 있었지요 소읍의 어린이 집으로 날마다 아침을 싣고 온 그녀는 아침 닮은 예쁜 배달부

시와 사랑 2020.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