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랑 434

이장

이장 소순희 아버지의 백골을 싸고 있던 실핏줄 같은 나무뿌리는 무엇을 더 얻어먹자고 그 삭은 뼈를 감았을까 황토를 비집고 든 세월이 징용 끌려가다 탈출한 그 인고보다 더 독한 옛 기억 속으로 아버지의 두 눈 속을 파고들어 그물을 치고 있었다. 푸른 벽오동나무가 우두두 우두두 고샅을 돌아가는 바람으로 온종일 나분대고 나는, 창호지에 수습한 아버지의 백골을 지게에 지고 눈물길 바람재를 넘었다. 살아서는 나를 훨훨 업어 주시던 산 같은 등도 분토 되더니 흙살로 돌아가 산 아래 눕다. 어린 날 그분의 입속 맛난 것까지 꺼내 먹던 아이는 이제 비만증에 걸려 생성을 꿈꾸는, 꿈꾸는 2021 (1988년 광주 대구간 88 고속 도로가 나면서 수 많은 산소를 이장하게됐다. 아버지가 도장골에 묻힌지 15여 년 후 방죽골..

시와 사랑 2021.01.26

동거

동거 소순희 고통에도 뜻이 있다는 걸 알고부터 애써, 버릴 것 그것마저 내 육신 일부로 껴안는다 늑간을 헤집으며 웃는 일련의 어둠이여 그리움으로 다스리는 한 날의 가혹함도 한 날 지나고 나면 허무인지 몰랐더냐 어차피 버리지 못할 삭은 상처도 오래 묵으면 내 살이 될까 그 토록 원하던 사랑이 될까 동행의 빈자리 문간에 기대서서 바라보는 흰 뼈 드러나는 능선마다 겨울이 깊다

시와 사랑 2021.01.17

고향의 달빛

고향의 달빛 소순희 바람이 느티나무를 흔들고 지나갔다 실핏줄 같은 가지가 흔들릴 때 늑골 사이사이로 고향의 달빛도 흥건히 젖어 들었다 초저녁에 켜 든 등불이 달빛 아래 숨죽이고 고양이의 날카로운 울음도 그 흔한 어둠 한쪽 내어 쫓지 못한 십일 월의 밤은 낮은 촉 수로 기우는 밤을 끌어가는데 고향 남원 산동의 들판에 질펀히 깔린 푸른 달빛 아래 낮은 지붕들이 잠든 이 고요를 지키려는지 개 한 마리 짖지 않고 하얗게 논밭을 덮던 무서리가 아버지 머리처럼 희었다

시와 사랑 2020.11.16

가을 오후

가을 오후 소순희 날씨 한 번 참 좋다 물비늘 이는 가을 오후, 그냥 물가에 앉아 있었어 민물 내음 휙 스쳐 지나간 다음 수면위로 은빛 옆구리 번득이며 솟구치는 피라미들 순간, 그 빛이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반복된 솟구침은 밥 먹는 일, 하루살이 떼 맴도는 시간 봇또랑 가에 갈대도 조금씩 자리를 나앉던 고요 속으로 물결은 자꾸만 해찰 말라는 아버지 말씀처럼 밀려와 갑자기 바빠진 오후 녘에다 오줌을 갈겼어 역광으로 하얗게 부서지던 물 위에 그 뻗침이 잠시 잠깐 시원한, 숙제를 끝낸 하루의 저녁처럼 그때 초등학교 육학년 가을 오후 범벌 땅콩밭가에 미루나무도 키가 훌쩍 커 버린 정말이지 시원한 가을 오후였어

시와 사랑 2020.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