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삶 벼랑 끝 삶 등짐을 지고 얼굴을 묻는 벼랑 끝 짐꾼은 칼날 같은 생의 외길을 안다 반쯤 엎드린 자세로 걸어야 하는 산과의 밀착은 원시로부터 전수된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다. 다른 길 없는 바위 직벽의 계단을 기도하며 오르는 짐꾼의 발가락은 조금의 실수도 허용치 않는다 오만한 자의.. 시와 사랑 2015.06.06
유월 저녁에 <누군가 그리운 날엔../53x41Cm/2009/소순희작> 유월 저녁에 서쪽으로 줄곧 해를 따라 달려왔다 지평으로 숨어드는 유월 저녁의 불덩이를 마주하는 사내의 얼굴이 붉다 하루의 경계를 짓는 반쯤 지워진 공제선 위 저 어둠 속으로 길 하나 내는 예리한 톱날 같은 수목들은 그 자리에 발을 .. 시와 사랑 2015.05.29
풍경-10 <아침/2014> 풍경-10 입하에 든 백운호수의 오월 아침 웃자란 늦봄 한쪽이 큰 산을 끌어와 호수에 풀어놓았다 고요의 물가로 발을 내딛는 순간 푸드덕 날아오르는 물오리 한 쌍 아아 나도 놀랐지만 나 때문에 얼마나 놀랐니, 미안! 잠시 파문이 일다 다시 고요해지는 수면에 화들짝 깨어.. 시와 사랑 2015.05.10
당신이 있는 봄날 <아침/사진: 소순희 2014> 당신이 있는 봄날 봄을 얻지 못하고 죽은 텃새 한 마리가 붉은 꽃잎 아래 검게 눈을 뜨고 있었다 하늘은 동백 숲 사이로 조각조각 편집되고 그림일기 같은 당신은 봄날을 휘청거리며 걷고 있었다 고립무원의 청춘을 살아 보자고 맹세한 날도 눈 감으면 아득히.. 시와 사랑 2015.04.19
그 날 그 날 해골의 언덕에 그 날 못 박는 망치 소리 들리더냐 심중의 돌문을 열고 귀 기울여보라 핏줄 터지는 격정의 쓰라린 여섯 시간 사막에서 불어 오던 더운 바람도 자고 태양도 빛을 잃었더니라 나, 경중의 죄 모르고 살았더니 내 죄값으로 나무에 달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오!주님 .. 시와 사랑 2015.03.25
노루귀 노루귀 소순희 저 귀 쭝겨 무슨 소리 듣고 싶을까 우수 지난 양지 녘 흙살 트는 이른 봄날 털 보송보송한 꽃대 올리더니 바람결에 잠 깬 노루처럼 처음 귀 열어 우주 소리를 수신하네 사랑하는 사람아 봄바람 빈 가지 눈 틀 때 시끄러운 세상 속으로 귀 기울여 그대에게 송신하는 사랑 노.. 시와 사랑 2015.03.13
너는 가라 <7월이 오면.../4호/2007/소순희작/Oil on Canvas> 너는 가라 가라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가는 길 광야에 거기 누굴 위해 가느냐고 반문하지 말라 그냥 가라 구원의 말씀 가지고 가 전하라 단 한 영혼도 죽음으로 내몰지 않는 하나님 사랑 볼지니 천하에 귀한 것 사람이니라 -사도행전 8장26~39.. 시와 사랑 2015.03.07
껍질 <산타마리아 살루테성당/소순희작/ 펜 수채> 껍질 어디로 가야 하나 오랫동안 너를 떠나지 못했다 앞을 가로막는 눈부신 햇살, 이젠 그런대로 품고 갈만하다 기립 박수로 보내는 세상의 일들을 다시는 마음에 두지 않으리 뜬소문으로 듣는 너의 소식 아득한 시공으로 풀어내도 귓속.. 시와 사랑 2015.02.25
겨울비-2 겨울비-2 누군가 떠나는 저녁 무렵 우산도 없는 뒷모습을 짚어가며 우요일의 행간을 적신다 가지 마라 겨울 산다화 찬비에 지는 남녘도 찰 터인데 더러는 이별의 예고도 없이 하늘로 가고 남은 자는 푸른 대숲 길 걸으며 입춘 지난겨울 끝에 시린 비를 맞는다 꽃은 다시 별일 아닌 듯 피어 사람 모으는 봄, 곧 온다 가지마라 빗속으로 산다화 뚝뚝 져간다고 소순희 시와 사랑 2015.02.18
어머니 전상서 <어느 봄날/2004/4호/Oil on Canvas> 어머니 전상서 글 모르는 어머니 앞으로 편지를 쓴다 객지 밥 서러워도 잘 있노라고 고향의 산천은 잘 있느냐고 편지 장 받아 든 까막눈 어머니 이웃 아재께 달려가 편지 읽고 눈물 찍어 내신다 농투사니 되지마라 등 떠밀던 봄날 아지랑이 속에 가물거.. 시와 사랑 2015.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