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열매
산수유 열매 소순희 무엇이 가을을 놓아주지 못할까 산수유 붉은 열매 남겨놓은 울 안의 남향 온종일 텃새 한 마리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한 해의 남은 시간도 속절없이 스러지는 지붕 낮은 초라한 찻집 풍경 속에 갇혀 이제 겨울로 흘러가는 것이냐 유리창 밖엔 하늘로 솟구치는 눈발 문득, 헛구역질 나던 계절의 끝머리에서 가는 발목을 덮던 유년의 일들에 왈칵 눈물이 나는 건 쓸데없는 일 이거늘 눈발 속에 제빛 잃지 않고 짐승처럼 웅크린 저녁 사람들 어깨 위로 점등되는 도시의 불빛이 야윈 얼굴로 가로수 그림자를 그려낼 때 지다만 잎 사이로 가을의 꼬리가 잘리고 있었다 죽은 듯 엎드린 기와 담벼락을 끌어가는 저문 길도 눈 속에 이지러지고 낮 새도 떠났다 그래도 가을을 내주지 못한 산수유 열매가 촉수 낮은 장식용 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