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랑 435

도깨비바늘

도깨비바늘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다 바짓가랑이에 붙어 집까지 따라온 도깨비바늘의 검은 눈을 보았다 올곧게도 바늘을 꽂아 동행하며 어딘가로 멀리 떠나 일가를 이루고 싶은 한해살이 풀로 긴 여름 견뎌오며 품어 온 새끼들 오죽하면 타인의 몸 빌려 퍼뜨리고 싶었으랴 이 악문 씨앗들 뜯어내며 눈물이나 울타리 가에 고이 묻어 주었다 아버지도 청천 하늘 우러러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곳에 우리를 슬어놓고 떠나셨다 속수무책이던 세월에 도깨비바늘처럼 붙어산 어린것들의 귀에 징그러운 바람 소리 얼마였더냐 그래도 몸 부려 동행하는 오늘이 희망이라고 아무도 모르게 속 깊이 묻어주었다 소순희/2013 (월간 모던포엠3월호 수록)

시와 사랑 2014.12.20

산수유 열매

산수유 열매 소순희 무엇이 가을을 놓아주지 못할까 산수유 붉은 열매 남겨놓은 울 안의 남향 온종일 텃새 한 마리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한 해의 남은 시간도 속절없이 스러지는 지붕 낮은 초라한 찻집 풍경 속에 갇혀 이제 겨울로 흘러가는 것이냐 유리창 밖엔 하늘로 솟구치는 눈발 문득, 헛구역질 나던 계절의 끝머리에서 가는 발목을 덮던 유년의 일들에 왈칵 눈물이 나는 건 쓸데없는 일 이거늘 눈발 속에 제빛 잃지 않고 짐승처럼 웅크린 저녁 사람들 어깨 위로 점등되는 도시의 불빛이 야윈 얼굴로 가로수 그림자를 그려낼 때 지다만 잎 사이로 가을의 꼬리가 잘리고 있었다 죽은 듯 엎드린 기와 담벼락을 끌어가는 저문 길도 눈 속에 이지러지고 낮 새도 떠났다 그래도 가을을 내주지 못한 산수유 열매가 촉수 낮은 장식용 등처럼..

시와 사랑 2014.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