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 어떤 날 햇볕 속으로 봄눈이 내리고 있었다 미치도록 그림을 그리고 싶은 날 좋아하는 색깔 마음 놓고 칠 해봤으면... 모델은 와 주지 않고 목을 뽑는 수선화 어린 싹에서 봄 냄새가 나고 있었다. 1988소순희 알뿌리 화초 수선화를 샀다. 수경재배식으로 물컵에 꽂아 창가에 두고 뾰쪽이 싹이 터 오는걸 .. 시와 사랑 2009.01.07
고흐의 화집을 보며 고흐의 화집을 보며 야윈 등불 하나 켜면 어둠은 반으로 준다. 낡은 식탁에 앉아 감자 먹는 마른 풀꽃 같은 사람아 나는 외로움도 함께 꿈틀대는 <빈센트 반 고흐>의 시선을 보았지 그의 눈은 외 뿔 박이 도깨비의 초록 등불이다. 마디 굵은 손엔 면도칼이 쥐어지고 귀는 잘렸다 생레미의 정신병원 .. 시와 사랑 2008.12.26
소순희 그림모음-(7) <여량의 아침/4호/2008/Oil on Canvas> <다뉴브강의 추억/4호/2008/Oil on Canvas> <가을 북한산/3호/2006/Oil on Canvas> <학일리의 겨울/8호/2008/Oil on Canvas> <서설/1호/2008/인향봉님소장/Oil on Canvas> <솔숲강변/4호/2008/Oil on Canvas> <Rome에서/2008/8호/Oil on Canvas> <통영항에서/3호/200.. 그림이야기(캔바스 위의 날들) 2008.12.16
귀로 귀로 가난한 자에게도 동일한 은총은 안식이다 겨울 볕 날개를 접는 저녁 따순 밥 한 그릇과 가족의 하루가 집약되는 집으로 가는 길 알 전구 희미한 외등마저 고맙구나 지친 어깨를 겯는 느린 바람결이 겨울답지 않게 포근할 때는 한 잔 술의 취기도 행복이었다 언덕을 넘는 두 줄 전선 위 음표로 걸.. 시와 사랑 2008.12.09
바닷가에서 만난 소년 지난 여름 거제도 해안 초소에서 근무하던 때의 작은 충격을 잊을 수 없을 뿐만아니라 짜증이 나고 마음이 나태해지기라도 하면 그 때 그 소년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아 마음을 바로 잡곤 한다. 중대 본부에 가서 보급품을 수령해 초소로 돌아 오던 중, 바닷가 낚시터에서 같이 낚시를 하던 아들 녀석.. 옮겨 온 글 2008.12.05
늦가을 이때쯤 늦가을 이때쯤 안양의 가을도 관악의 능선을 넘어온다 앞산 떡갈나무숲 넉넉한 산 빛으로 저물어 아득한 어둠 문 쇠기러기 내려오면 천변 갈대 그림자는 한강으로 흘러가고 속울음 우는 물만 밤하늘로 오른다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세월과 옛것 아닌 물의 평행선 흠집조차 아름다운 이 가을 녘엔 차.. 시와 사랑 2008.11.26
누구의 영역인가 누구의 영역인가 개미,바퀴벌레 박멸 약이라고 적힌 붉은 글씨가 핏대를 세우는 노인의 리어카 바퀴자국에 죽음의 흔적이 무수히 찍힌다 독한 성분 감당치 못한 치사량으로 몸의 마디를 꺾고 웅크린 검은 눈빛들 그 주검의 군락은 페르몬이 두절된 길에 응축된 별빛처럼 뿌려진다 인간이 차지한 빈 .. 시와 사랑 2008.11.12
도시의 나무 도시의 나무 나목이 되고서야 보였다 몇해를 나일론 포승줄에 묶여 맨 살을 파고드는 가혹한 형벌 새 가지를 뽑아 올려 밤마다 별과 교신하는 죄로 잎 지고 난 후 과감히 톱질 당하는 어린 가지의 잎눈 물관부를 관통하며 이질의 물질을 접목하는 그 아픔을 어쩌란 말이냐 몸둥어리는 차이고 긁힐 때.. 시와 사랑 2008.11.05
J에게(35)-피아골에서 J,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는 부류와 다시 내려올 산을 뭐하려고 가느냐 반문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나름의 삶의 방식이겠지만 산을 올라보지 않고는 그 깊이와 높이와 묘한 매력을 느낄 수 없습니다. 미명은 아직 밝아 올 수 있다는 것이 설렘입니다. 노고단 고개를 넘는 새벽 어스름에.. 엽서 2008.10.29
황혼을 위하여 황혼을 위하여 소순희 사랑아 저 가을빛 산 넘어 오시거든 빈 잔에 채워지는 노을빛을 보아라 황혼이 아름다운 건 색채뿐 아니라 지나 온 여정의 자취려니 우리가 창 넓은 찻집에서 힘겹게 내리는 플라타너스의 잎새를 보며 지상에 누운 저 순간 숨죽인 허무의 근원을 한 철 기대어 산 죄로 개명해 놓고 말없이 찻잔만 만지작거렸지 산다는 건 누군가에게 나를 맡겨 두는 것 잠시 빌려 쓴 이 땅의 모든 피조물에 기대어 사는 일 그리하여 견고하게 직조된 고집의 속성을 버리는 연습으로 황혼의 아름다운 길 걷기 위해서이니 가을에는 그리 깊게 살아 볼 일이다. 2008 시와 사랑 2008.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