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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

동거 소순희 고통에도 뜻이 있다는 걸 알고부터 애써, 버릴 것 그것마저 내 육신 일부로 껴안는다 늑간을 헤집으며 웃는 일련의 어둠이여 그리움으로 다스리는 한 날의 가혹함도 한 날 지나고 나면 허무인지 몰랐더냐 어차피 버리지 못할 삭은 상처도 오래 묵으면 내 살이 될까 그 토록 원하던 사랑이 될까 동행의 빈자리 문간에 기대서서 바라보는 흰 뼈 드러나는 능선마다 겨울이 깊다.

시와 사랑 2008.10.01

운동화 도둑

종례를 마치고 우르르 쏟아져 나가는 급우들 뒤로 엇 비쳐드는 서녘 햇살 줄기 속에 뽀얀 먼지가 떠다닌다. 복도 한 쪽 벽 붙박이 신발장엔 한 켤레의 신발도 남지 않았다. 나는 순간 아찔하다. 이 주일 전에 새로 산 내 운동화가 있어야 할 41번 자리에 없다. 몇 번이고 교실을 돌아보고 신발장을 기웃거려봐도 칸칸이 비어 있다. 울컥 목울대까지 치며드는 상실감에 막 눈물이 나며, 어머니얼굴이 오버랩 된다. 검정 운동화 한 켤레로 한 학기를 버텨온 터라 닳아빠진 발바닥 밑에 밟히는 작은 돌의 촉감과 수없이 빨아 희끄무레 색 바랜 운동화의 앞 머리부분과 너덜거리는 뒤꿈치, 그리고 끈을 꿰는 눈이 두어 개 빠진 낡은 운동화를 어머니께 보이며 새 운동화를 사달라고 어렵사리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피 같은 돈을 쥐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