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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던 겨울

네가 있던 겨울 소순희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 버린 나의 우정이여! 그 해 겨울 섬진강 언 강물이 풀리며 쓸리어 갈 때 얼음장 밑으로 침전 되는 너의 조각난 얼굴을 보았다 강변의 야생화를 무던히도 좋아 하던 지친 너의 황톳빛 가슴에 그늘 내릴 때 휘파람 불며 강둑에 누우면 흰 꽃들이 날렸었지 행방이 묘연한 저녁 하늘 도둑질한 그리움은 어디로 갈까 귓 볼을 헤집는 징그러운 바람 소리 너와의 추억을 놓아주지 않는구나 가슴 높이서 물새가 날던 마지막 겨울 집 한 자 깊이의 남녘 눈 속에 몹쓸놈의 백혈병은 자꾸만 자라 숨 소리마져 지워가는 이 어둠의 저 쪽 그늘의 음계를 따라 웃는 너의 얼굴에서 그 흔한 작별 인사도 없이 남해로 흘러 처음 자리로 돌아가고 나는 남아 무슨 희망으로 긴 해후의 날을 기다릴 것인가...

시와 사랑 2003.12.08

잠 수족관 속의 어린 악어는 가을 잎이 지는 것도 모른 채 짧아 지는 하루를 잠만 자고 있었다. 소순희 "여보세요?" "........" "잘 지내시나요?" "네,...지금 좀 바뻐서요.따락,뚜뚜뚜" 서둘러 전화를 끊는 그의 목소리 끝으로 가을이 깊어 있었다. 투명이라는 유리벽 속에 갖힌 가수면(假睡眠)상태의 이십대 초반, 볼 수 있다고 말하는 모든 것이 헛된 것 이었다. 볼 수 있으되 보이지 않던 미명의 계절과 끝없이 타오르던 열정의 방편들이 혼돈 속에 지쳐 있었다. 그런 내 이십대 초반은 늘 허기진 날들 이었다.

시와 사랑 2003.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