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캔바스 위의 날들) 84

그 가을의 기억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 연풍면을 끼고 있는 희양산(998m)에서 흘러내린 양산천의 가을을 스케치한 그림이다. 추수가 끝 난 빈 논 밭은 평온하고 스산한 기온이 맴도는 11월 상순의 양산천에 그림자를 드리운 나무들은 아직도 가을 잎을 달고 서 있다. 계절마다 색 다른 변화를 이끄는 신의 섭리와 자연에 감사한다. 파스텔 톤의 곰삭은 빛깔이 심중을 파고드는 건 아니 온 듯 가는 계절의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미묘한 색조의 변화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원경의 이웃 풍경들이 보일 때가 참, 예쁘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눈으로 보기엔 화려한 색조의 선명한 시절을 한 번쯤 누려 보고 싶었다.

Korea Art Festival 2020 1 15

수 년 전 남영역 근처에 작업실을 가졌다. 간혹, 작업실 열쇠를 가지고 나오지 못한 날은 누군가가 키를 가지고 나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청파동 산 몇 번지의 골목을 산책 하곤했다. 오랜동안 지켜온 누추한 달동네의 골목이 정답게 다가오고 삶의 질곡이 배어 있는 집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봄이면 담 너머로 얼굴을 내미는 라일락꽃 그리고 집마다 제라늄 화분에서 붉은 꽃이 오래토록 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과 6펜스라는 입체 간판을 단 거리를 스케치했다. 숙대 거리는 젊은 이들의 활보로 늘 생기가 넘쳤다. 그곳 거리에 장미 그림을 많이 걸어 둔 카페가 있었는데 커피보다 그림이 좋아 몇 번 들렀다. 그 시절도 이젠 그림속에 정지된 상태로 오래도록 나와 동행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림 이야기-황유엽

그림 이야기-황유엽의 풍경 한 점 소와 여인과 가금(닭,오리 등 날 짐승)을 등장시킨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 화백의 작품 중에 간혹 풍경이 그려지는데 위 작품도 그중 한 점이다. 산은 넘지 못하고 바다로 가면 북에 두고 온 고향에 갈 수 있을지 모를 의문 부호로 직립한 저녁 무렵의 풍경 하나. 노을이 질 때마다 고향은 더 그립게 화백의 심기를 흔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분단의 장벽은 실로 단절의 실존적 의미를 각인시키고 말았다. 귀향의 길은 가시철조망과 삼엄한 경계의 눈이 살벌해 산허리를 어떻게 넘겠는가. 체념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폐한 모든 것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듯 한 시대의 슬픔을 표현한 황적색과 암록의 아웃라인이 스스로를 묵인한 한의 결정이지 않았을까! 화백의 그림은 다소 어두운 분위기와 강렬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