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113

우리 아짐

우리 아짐 소순희 아이들의 함성이 도시의 가을 하늘로 풍선처럼 떠 오르고 있었다. 넓은 잎 플라타너스 나무가 투명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운동장 가에는 흰 운동복을 입은 어린아이들이 꼬물꼬물 모여 응원을 하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운동장을 달리고 있었다. 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나는 키 발을 딛고 벽돌 담장 너머로 아이들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들의 함성 속에 함께 묻혀 있자니 불현듯 코끝이 찡해오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건 내 유년의 소상한 기억 저편으로 폴짝 뛰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가을 오후는 늘 서늘했다. 운동회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텅 빈 운동장엔 미루나무 긴 그림자가 줄지어 뻗어 있곤 했다. 이 때 쯤이면 출출해졌다. 빨리 집에 가서 삶아놓은 고구마나, 감나무에 달린 ..

그해여름

그해여름 사 학년 여름방학도 거의 끝 무렵에 걸려 있었고 매미 소리에 묻혀 버린 여름 오후를 후텁지근한 기운에 숨이 막힐 듯했다. 이따금 매미 소리가 그칠 때마다 마을은 쥐죽은 듯 고요했고, 텃밭의 푸성귀며 돌담을 타고 오른 호박잎이 염천 볕 아래 축 늘어졌다. "아따, 왜이리 덥다냐 썩을놈의 날씨가 사람 죽이네! 잉" 마루에서 어머니 무릎을 베고 낮잠에 설핏 빠져들면 어머니는 노랗게 콩기름 먹인 부채로 달라붙는 파리를 부채질로 탁탁 쫓아 주셨고, 부채 바람에 비릿한 콩기름 냄새가 났다. 그러다가 어머니도 밀려드는 졸음에 못 이겨 텃밭의 처지는 채소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하루 일과 중 소먹이 꼴을 베는 것이 내게 맡겨진 일이었고 내가 하지 않으면 식구 중 누군가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므로 책임감에 젖어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