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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여름비 소순희 투둑투둑 나뭇잎에 비듣는 소리 가만히 귀 기울여보니 배롱나무 붉은 꽃 터지는 소리였구나 내 피도 붉게 온 몸을 잘 돌아 또 한해 푸른 피 잘 도는 여름을 맞네 2022 조영제 투여 CT검사 판독 결과, 심혈관이 부분적으로 50% 막혀 있다는 주치의의 설명이다 . 올 여름도 왕성한 푸르름의 피가 잘 도는데 나도 주님 은혜 가운데 온 몸 피가 잘 돌아 또 한해 여름을 맞이한다.

시와 사랑 2022.07.30

수학 여행

수학 여행 소순희 나는 아직 경주에 가보지 못했다. 천년고도 경주를 떠올리는 건 여행의 종착지라고 마음에 새겨둔 뜻도 있거니와 진정으로 마음의 눈이 뜨일 때 가 보아야겠다는 신념도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열네 살 중학교 일학년 가을 학교에선 수학 여행을 계획하고 한 달 전부터 담임 김상수 선생님께서 종례 시간이면 누누이 말씀 하셨다. 기억으론 수학여행비가 3만 원이었던 거로 알고 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 혼자서 자취를 시작했고 토요일엔 집으로 가서 일손을 돕고 일요일 저녁 막차로 쌀과 김치를 가지고 자취방으로 가곤 했다. 몇 번이고 수학 여행비를 어머니께 이야기할까 망설이다 못하고 말았다. 아버지가 가신지 약 일 년이 되고 일찍 집안 사정을 아는 터라 끝내 그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어쩌면 그..

오동꽃 봄날

오동꽃 봄날 소순희 인천행 열차가 들어서는 오류역 높은 담장 너머 까마득 잊었던 보랏빛 연가가 눈 속에 들려오면 해마다 그 꽃자리 가여운 봄 너에게 이르는 옛길은 새로 지은 집이 틀어막고 누워 있다 함께 하늘을 이고 선 버드나무는 바람결 하나 일지 않고 사관은 쓸쓸하다 어디 간들 나무들 없을까만 유독 오류동 이름자에 걸린 너에게 넓은 잎 연서를 쓰고 싶구나 성한 곳 없는 귀와 눈이 사면팔방으로 열릴 때 봄의 흔적을 캔버스에 옮기는 초로의 화가 마음을 헤집어 놓고 한 고개 넘어 또 봄날은 간다 바람 없어도 하나둘 지는 오동꽃 땅 위에 봄날은 간다 2022 미술 강의 갈 때마다 눈여겨보는 오류역 주변의 오동나무에 올해도 보랏빛 오동꽃이 피었다지는 봄날, 문득 고향 집 돌 담가에 피던 오동꽃이 오랜 추억을 불..

카테고리 없음 2022.05.15

살구나무가 있는

살구나무가 있는 소순희 아가, 세상 어디에도 내 맘대로 된 일은 없느니라 어디에 뿌리 내리든 굳게 살아가거라 거대한 직벽 산 볕 한 줄기 들지 않는 아파트 사이 키 큰 나무들 머리 들어 가리운 틈새에서 하늘 한 조각 허다한 죄처럼 이고 선 허리 휜 내 어머니 같은 살구나무여! 살아보겠다고 안간힘 쓴 등걸에 봄바람 스쳐 지나자 눈물 같은 꽃 몇 개 시절 알아 피워냈구나 다만, 봄이라고 모두 희희낙락거릴 때 봄밤 뒤척이며 돌아눕는 허술한 쪽잠에도 꿈은 돋아나 서러워할 이유 없이 봄이 깊다 절망도 이쯤에선 아름다운 법 다시, 봄은 어머님 말씀 아가, 어디 있든 배곯지 말고 살아라 2022

시와 사랑 2022.04.19

그리운 전화

그리운 전화 소순희 엥간허면 한 번 댕겨 가그라 밤이면 소쩍새 울어쌓고 참말로 적적허다 시방, 우리집 울타리가에 개 복숭꽃이 훤하다 나도 아츰에 벌건 꽃 보고 화들짝 놀랬다 날씨 땃땃허면 알아서 꽃 피고 바람도 몸에 보드랍게 갬긴다 사는 일 뭐 별거냐 이런 것이 세상 사는 이치 아니냐 꽃지기 전에 핑 댕겨 가그라 꽃도 좋지만 니 얼굴 많이 보고잡다 2018

시와 사랑 2022.04.13

어머니와 산수유

어머니와 산수유 3월 24일 휴억에게서 고향 집 뒤꼍에 노랗게 활짝 핀 산수유꽃 사진을 보내왔다. 처마보다 훌쩍 높은 굴뚝 옆에 빈집을 지키며 산수유는 저렇게 잘도 피었구나 문득 마음에 울컥 맺히는 그리움이 꽃처럼 일어 눈물이 핑 돈다. 올봄도 어김없이 꽃 소식이 상경하지만, 이토록 절절한 건 처음이다. 어머니 가신지 6년, 나는 어머니가 뒤안에 산수유나무를 심은 지도 몰랐다. 키 큰 참옻나무와 대봉 감나무가 있었는데 어느 해 인가 옷 알레르기로 퉁퉁 부은 얼굴과 가려움증으로 된통 힘들어하시더니 베어내고 감나무도 잎만 무성하고 열리지 않아 베어냈다. 그리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산수유나무를 심으셨나보다. 해마다 3월이면 제일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꽃처럼 자식 소식 기다리셨을 어머니 그립다. 뒤안 장독대 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