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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유품

어머니의 유품 소순희 열 두어 쪽으로 조각난 질그릇이 베란다 창가에 나뒹굴었다. 바람에 빨래건조대가 넘어지면서 떨어뜨려 깨어지고 말았다 어머니의 유품이랍시고 보관해 왔던 간장을 나눠 담던 작은 그릇이다. 볼품없고 하찮은 것일지언정 내게는 귀중한 어머니의 유품이다. 열 살 무렵 네 살 남동생(외삼촌)을 남기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큰집에 얹혀살면서 두 남매가 받은 구박과 눈칫밥이 얼마나 서러웠는지 모른다고 어린 날을 가끔 회상하곤 했다. 배고파하는 네 살 동생을 장독대 뒤로 불러, 숨겨온 눌은밥을 떠먹이며 얼마나 마음졸였을까 깡마른 동생이 마루 끝에 앉아 방아깨비처럼 깐닥깐닥 발을 흔들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하시던 어머니의 기억은 소멸되고 짧은 기록으로 남을 수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1949년..

J에게(67)-모락산(慕洛山)에서

J에게(67)-모락산(慕洛山)에서 유월이 되면서 초목은 가장 왕성한 푸르름으로 충만합니다. 경기서남부지역의 도심을 병풍처럼 깜싸고 있는 모락산(385m)에 오릅니다. 그리 높진 않지만 숲의 생태가 성한 의왕시 소재 산입니다. 적당한 암릉과 조망이 좋아 안양,군포,과천, 멀리는 서울까지 눈에 들고 관악산,수리산,청계산,백운산을 형제처럼 어깨를 겯는 사철 아름다운 산으로 도회 근교에선 제법 사람을 끌어 안아 쉼을 얻게 합니다. 이 산은 서두르지 않는 가벼운 산행이 묘미입니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넷째아들 임영대군이 이 산에올라 중국수도였던 낙양을 사모하여 붙여진 모락이라는 이름과, 임진왜란때 인근 백성이 이 산 굴에 피신했는데 한 아이가 굴 앞에 울고있는 것을 본 왜구들이 굴 앞에 불을 질러 몰살했다 해서 모..

엽서 2018.06.08

꾀꼬리

꾀꼬리 그날도 아이들은 마을 앞 소나무 숲에서 놀다 무료해지면 새 집을 찾아 이마에 손바닥을 펴 햇볕을 가리며 키 큰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터를 잡고 마을이 형성될 때 심어진 수령이 몇백 년 됨직한 느티나무와 백여 그루의 소나무가 숲을 이룬 곳은 늘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어르신들은 느티나무아래서 여름 더위를 피했다. 도랑을 하나 건너면 참나무(도토리나무)가 또 다른 초록 군집으로 숲을 이룬 채 고즈넉이 소나무 숲과는 다른 빛깔로 부드럽게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가을에 도토리를 따기 위해 큰 돌로 나무의 허리를 쳐서 푹 파인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 여간 안쓰러운 것이 아니다. 그곳엔 봄이면 말벌과 사슴벌레와 풍뎅이가 몰려와 수액을 먹느라 영역싸움이 일어나곤 했다. 우리는 고무신을 벗어 말벌을 낚아채 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