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안녕 <썰물/6호/2015/소순희작/Oil on Canvas> 여름 안녕 여름을 떠받치던 돌기둥이 무너지자 혼절한 여름의 머리 위로 습한 바람이 눈물 꼬리를 남기며 스러졌다 그 흔적의 비린 땅 끝에서 가을이 빈 하늘을 기웃거렸다 어정칠월도 건들 팔월도 감당해 낼 산 하나 눈 안에 두더니 시월은 어느 .. 시와 사랑 2015.10.01
핑갈의 동굴 멘델스존에게 음악적 영감을 준 스테퍼 섬의 핑갈의 동굴 < 사진 라라와복래> 핑갈의 동굴 <Mendelssohn/Overture, Fingal,s Cave> 왜 아니 오시나 핑갈이여! 파도는 저렇게 외로운 스태퍼 섬의 흰 뼈를 갉아 먹는데 밤낮 멘델스존의 손 끝에서 바다가 울고 저 바람 소리 늑골 사이를 통과할 .. 시와 사랑 2015.09.26
누님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게 감기(고뿔)였지 싶다. 누님의 등에 납작 엎드려 귀를 등에 대고 옷에 콧물을 묻혀대던 다섯 살쯤의 유년기는 특별한 일을 제외하곤 그다지 기억 밖으로 아스라이 멀어질 뿐이다. 가을비가 갠 뒤 누님은 나를 업고 뒷골 초입의 밤나무 아래서 미처 영글지 못 하고 떨어진 밤송이를 주워 고무신 발로 지그시 누른 후 막대기로 가시가 성한 껍질을 벗겨 푸르스름한 풋밤을 꺼내 겉껍질을 벗긴 후 속껍질을 이빨로 긁어 벗겼다. 덜 영근 하얀 풋밤을 입속에 넣어주며 흐믓해 하던 아홉 살 누님의 불그레한 볼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지금도 풋내나던 밤의 속살이 입안에 부드럽게 퍼지듯 유년의 추억도 그렇게 떠오른다. 가끔 누님의 노랫소리는 등에 귀를 대고 엎드린 내 귀에 웅웅 거리며 불분명한 음성으로 전해.. 추억그리고 현실 2015.08.25
J에게(63 )-설악 권금성에서 <수령 800년 무학송> <권금성에서 바라 본 울산바위> J.설악은 요지부동으로 이 자리에 있지만 나는 좀처럼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삼척동자도 여기 발자국을 찍는데 뒤늦은 산행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지금에 와서 바라본 산이 눈에 들기 때문입니다. 어쭙.. 엽서 2015.08.20
미코노스(Mykonos)섬의 하루 제 22회 예형회 회원전 2015/8/5~8/11 인사동 경인미술관 <미코노스(Mykonos)섬의 하루/소순희작/45.5X33.3 Cm/Oil on Canvas/2015> 그림이야기(캔바스 위의 날들) 2015.08.10
메타세콰이아 숲길 메타세콰이아 숲길 소순희 하늘로 사다리를 놓은 메타세퀘이아 숲은 수직의 깊이로 하늘의 중간쯤에 소실점을 이룬다 목질부를 치며 돌아가는 바람과 엄숙함으로 말 없는 그대가 걸어간 길이 직립 도열한 수행자의 침묵처럼 무겁다 청량한 날에 숲에 든 그대는 풀 먹인 하늘 한 자락 오려 푸른 숲길에 하늘을 만들고 새들이 나는 휘영청 높은 가지 끝 구름 한 점 걸어 놓았다 우리가 사는 일 중에 잘한 일 하나는 침엽 낙엽수 그 숲에 세상에서 지친 몸 곁들어 쉼을 얻는 일일 것이다 소순희 시와 사랑 2015.06.20
이팝 꽃 피면 바다 가는 길 3호(서해에서)-목우회 회원전 출품(청류재식물원미술관소장(안성)) 이팝 꽃 피면 소순희 솥 적다 솥 적다 배고픈 늦봄, 소쩍새 울고 간 이팝나무 자리마다 흰 고봉밥 지천으로 올렸습니다 다랑논 물고에 앉아 들 논 죽어서도 들 논 그리던 아부지 빈 쌀독 눈물로 그렁그렁 채.. 시와 사랑 2015.06.12
벼랑 끝 삶 벼랑 끝 삶 등짐을 지고 얼굴을 묻는 벼랑 끝 짐꾼은 칼날 같은 생의 외길을 안다 반쯤 엎드린 자세로 걸어야 하는 산과의 밀착은 원시로부터 전수된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다. 다른 길 없는 바위 직벽의 계단을 기도하며 오르는 짐꾼의 발가락은 조금의 실수도 허용치 않는다 오만한 자의.. 시와 사랑 2015.06.06
유월 저녁에 <누군가 그리운 날엔../53x41Cm/2009/소순희작> 유월 저녁에 서쪽으로 줄곧 해를 따라 달려왔다 지평으로 숨어드는 유월 저녁의 불덩이를 마주하는 사내의 얼굴이 붉다 하루의 경계를 짓는 반쯤 지워진 공제선 위 저 어둠 속으로 길 하나 내는 예리한 톱날 같은 수목들은 그 자리에 발을 .. 시와 사랑 2015.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