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랑 433

색깔론(1)

색깔론(1) 예쁘게도 예쁘게도 꽃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맑은 초록은 삼 학년 육 반 청춘의 마음을 헤집어 놓고 모르는 체하고 있었다 헤집힌 마음의 가장자리로 초록 빛깔처럼 쏟아지던 종아리가 이쁜 여자 애들의 웃음소리 그것도 모르고 독한 술처럼 오장 육부를 쓰리게 적셔오는 초록 그리움 하나 복병처럼 숨어서 나를 노리고 있었다. 소순희1997 언제부턴가 초록이 좋아졌다.그림으로 표현하긴 어려운색채다. 잘 익은 초록은 푸르다 못해 검다. 심중 깊이까지 침투해들어온 초록 빛깔! 내게도 삼학년 육반시절이 있었지 종아리이쁜 여학생들의 웃음소리는 들어도 들어도 좋다. 그것은 가장좋은 청춘의 시작 아닌가. 될 수있으면 쉬었다가자. 그짙푸른 초록그늘에... 곰소포구에서 6F소순희 개인전

시와 사랑 2005.03.14

일기

일기 소순희 앓던 치아를 뽑으며 나무 십자가 위 주님을 생각했다 며칠째 덧칠하는 그림 속 돔형의 지붕이 하얗게 빛나고 창문에선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다 독감 탓에 나흘간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악몽에 시달린 밤이었다 지난봄부터 군에 간 지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벼르던 날이 가을 끝자락에 와 있고, 혈관 주사가 효능이 있는 것인지 잠이 왔다 귀로에 성산대교 위쯤일까 낚시 바늘 같은 달이 서쪽 하늘 한쪽을 꿰어 들고 있었다 문득 동치미가 먹고 싶다. 2004.11. (성구미 포구에서 20P 목우회 동방의얼 전 출품작)

시와 사랑 2004.11.15

정선에 와서

정선에 와서 소순희 아침보다 먼저 물소리가 찾아드는 정선에 와서 한 사나흘 신문도 읽지 않고 라디오도 듣지 않고 TV도 시청하지 않으매 맑아지는 머릿속으로 산뽕나무에 감기던 바람이 찾아오고 산새소리가 귀를 열었다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문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만 저리도 높으신 양반들 목소리 듣지 않노니 세상에 이렇게도 맑아지는 이치 있거늘 무슨 연유로 거기 탁류에 휩쓸려 가야 하는가 간혹, 지친 육신의 허물을 청류에 휘적휘적 빨아 널고 물처럼 유유히 바람처럼 훠이훠이 살아 볼 일이다. 2004.소순희 주여! 며칠 만이라도 꾸밈 없는 원시의 날을 내게 주소서 단순하게 그냥 살아내는 기쁨을 허락하소서. 간혹, 세상일 잊어버리고싶다. 현실도피가아닌 진정한 쉼으로 그 후 최선의 삶을 도전하고싶다.친구여, 잠도 ..

시와 사랑 2004.08.25

家長

가장 소순희 집으로 가는 굽은 언덕길은 늙은 푸라타너스가 어느 가장의 마른 정강이처럼 희었다 발길질에 덧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눈도 귀도 상처 투성이다 별일 아니라고 나무에 기대어 입속말로 달래는 한 잔 취기가 이렇게나 눈물 겨울까 한 세상 머물 조립된 도시의 집들 그곳에 숨죽여가며 자식을 길러내는 이 장엄한 삶 앞에 고개숙인 아비들 위태로운 칼날 같은 하루를 딛고 간다 2004.소순희 누가 이 무변광야 같은 한 시대를 흔들리지 않고 살아 낼 수 있을까. 오늘의 가장들은 외롭다. 고독한 메신저, 힘내시라! 한 잔 술에 반은 눈물이라하지 않던가. 어뗳든 가족을 품는 울타리로 서 있는 한, 또 그곁에 같이 서는 누군가 있지 않은가! (nude 소순희 畵)

시와 사랑 2004.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