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사랑은 작은 우산속의 두 사람 내 어깨 젖어도 그 쪽으로 우산을 기울여 주는 것. 소순희99. 게릴라성 폭우가, 멀쩡하던 날을 가만 두지 않았다. 급작스레 쏟아 지던 비를 피해 버스 정류장의 늙은 푸라타너스나무 아래 서 있는데 우산 하나가 지붕처럼 가리워섰다. 돌아보니 넉넉한 미소의 어떤 아주머.. 시와 사랑 2004.01.26
전라도 풍경 전라도 풍경 호남선 열차를 타고 황토밭 언덕을 넘으면 나즉이 날아 오르는 까마귀 떼와 창 밖으로 흘러가는 논길 위 펄럭 펄럭 걷는 농부 하나 보입니까 김제 만경평야 끝간데 없는 지평위로 갑오 동학혁명의 붉은 피빛 노을도 보입니까 녹두장군 외세배척 쩌렁 쩌렁 울리던 목소리 들.. 시와 사랑 2004.01.01
부재 부재 언제부턴가 밤마다 진한 커피를 마시는 버릇이 들었다 억지 잠을 청하는 밤이면 보고픔이 더 하다는 걸 알았다 그로 인하여 그로 인하여 야위어 가는 내 심사는 흐린 날 예감으로도 그 없는 빈집엔 흰 살구꽃만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상현달이 걸린 예배당의 종탑 붉은 십자가는 내 영혼의 범죄.. 시와 사랑 2003.12.13
네가 있던 겨울 네가 있던 겨울 소순희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 버린 나의 우정이여! 그 해 겨울 섬진강 언 강물이 풀리며 쓸리어 갈 때 얼음장 밑으로 침전 되는 너의 조각난 얼굴을 보았다 강변의 야생화를 무던히도 좋아 하던 지친 너의 황톳빛 가슴에 그늘 내릴 때 휘파람 불며 강둑에 누우면 흰 꽃들이 날렸었지 행방이 묘연한 저녁 하늘 도둑질한 그리움은 어디로 갈까 귓 볼을 헤집는 징그러운 바람 소리 너와의 추억을 놓아주지 않는구나 가슴 높이서 물새가 날던 마지막 겨울 집 한 자 깊이의 남녘 눈 속에 몹쓸놈의 백혈병은 자꾸만 자라 숨 소리마져 지워가는 이 어둠의 저 쪽 그늘의 음계를 따라 웃는 너의 얼굴에서 그 흔한 작별 인사도 없이 남해로 흘러 처음 자리로 돌아가고 나는 남아 무슨 희망으로 긴 해후의 날을 기다릴 것인가... 시와 사랑 2003.12.08
봄 비 봄비 봄비는 하늘 가장 깊은 곳에서 온다 지상의 풀, 나무들 세상 모르고 잠 잘 때 가만가만 온다 기지개 켜는 저 꽃나무들 좀 봐 햇볕 속으로도 오고 나무들 등뒤로 숨어서도 온다 어디서 부르는 내 이름 석자 꽃잠 깨우는 봄의 정령 청명 지나고 곡우까지는 하늘 가장 깊은 곳에서 숨어서 봄비는 온다.. 시와 사랑 2003.11.06
잠 잠 수족관 속의 어린 악어는 가을 잎이 지는 것도 모른 채 짧아 지는 하루를 잠만 자고 있었다. 소순희 "여보세요?" "........" "잘 지내시나요?" "네,...지금 좀 바뻐서요.따락,뚜뚜뚜" 서둘러 전화를 끊는 그의 목소리 끝으로 가을이 깊어 있었다. 투명이라는 유리벽 속에 갖힌 가수면(假睡眠)상태의 이십대 초반, 볼 수 있다고 말하는 모든 것이 헛된 것 이었다. 볼 수 있으되 보이지 않던 미명의 계절과 끝없이 타오르던 열정의 방편들이 혼돈 속에 지쳐 있었다. 그런 내 이십대 초반은 늘 허기진 날들 이었다. 시와 사랑 2003.11.03
풍경-1 풍경-1 오늘도 이젤 앞에 앉아 고향을 그린다 요천*의 맑은 물 속엔 왜 그렇게 자갈이 많을까 캔버스에 칠 해지는 고향의 색채 흰색을 칠 하면 농부가 되고 빨간색 칠 하면 고추가 되고 어머니 얼굴은 어디에 그릴까 쭉정이 같은 자식 도시로 보내고 논에 엎어지고 일어나며 그립단 말 못 하는 어머니 고향 풍경 속 다 어머니 얼굴이다. 1986. *요천~섬진강의 한 지류인 시내. 장수군의 수분재에서 발원해서 분수령을 이루고 섬진강과 금강으로 흐름. "엄니,이제 농사좀 그만하세요." "그려,나도 이젠 허리가 꼬부라지고 힘없어 못해 묵것다. 쌀값도 없고 사가는 사람도 없다." "....." 자식들에게 자양분 다 내어주고 오그라들고 허리굽은 내 어머니. 언제부턴가 이 땅의 농부들은 노력과 투자의 댓가를 얻지 못 하고.. 시와 사랑 2003.10.24
조락에 물든 너의 눈속에... 방죽골 양지녘에 아버지의 유골을 묻고 돌아오던 날 보았다. 남원에서_ 서울. 고속버스 창밖 만경평야 지평으로 떨어지던 붉은 불덩이 하나를... 참 아름답다고 되뇌이며 아버지의 삶이 그랬을까. 적어도 욕심없이 살다간 무명의 삶이 저렇게 예쁘게 져갔다고 생각했다. 아무 말도 없었다.마지막 물새.. 시와 사랑 2003.09.28
어떤 날. 어떤 날 햇볕 속으로 봄눈이 내리고 있었다 미치도록 그림을 그리고 싶은 날 좋아하는 색깔 마음 놓고 칠 해봤으면... 모델은 와 주지 않고 목을 뽑는 수선화 어린 싹에서 봄 냄새가 나고 있었다. 1988소순희 알뿌리 화초 수선화를 샀다. 수경재배식으로 물컵에 꽂아 창가에두고 뾰쪽이 싹이 터 오는걸 지켜보며 생명의 소리를 듣다. 고운 볕속으로 눈 발이 날리는 날, 샤갈의 마을엔 3월에도 눈이온다고 시를 썻던 시인 김춘수 모습이 떠오른다. 며칠 후 수선화 어린 싹과 꽃 대궁이 올라오고 노란 여섯갈래 꽃잎에 붙은 원통형의 꽃이 소담스레 피어 환호작약 하던 날, 아무도 와 주지 않고 목을 뽑고 기다리는 내 앞에 봄 향기만 가득 하였더니... J의 상 소순희畵 6F Shang Ding 시와 사랑 2003.08.29
미술실에서 故 임직순 화백 미술실에서 금강력사와 로마의 무장 아그립바와 줄리어스 시이저 시어저를 배반한 암살의 주모자 브르터스와 메디치가의 쥴리앙 미의 여신 비너스 그리고 투우사 꿈의 아드리아네 폭군 카라카라... 그대들의 한 세기는 찬란한 고독이었고 비극이었다하자 그러나 오늘 이 자리 눈 빛 .. 시와 사랑 2003.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