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물장수 할아버지 소순희 그 방물장수 할아버지가 가위를 짤그랑대며 마을 길을 들어설 때는 겨울 오전쯤이었다. 누나들은 머리핀이나 옷핀을 사기 위해 하나둘 모여들었다. 정사각형 빳빳한 종이 위에 원을 그리며 검게 꽂혀있던 머리핀을 사고 가끔은 실타래나 바늘을 사기도 했다. 키가 작은 할아버지가 등에 지고 온 사과 궤짝만 한 곳엔 생필품이며 가락엿이 고작 몇 줄 밀가루 판에 묻혀 있었다. 비싼 거라곤 전혀 찾아보기 어려운 참 소박한 등짐이 그 할아버지의 전 재산 같았다. 그 겨우내 시베리아의 붉은 융단 같은 모자는 손 집는 부분이 낡아 흰 천이 드러났다. 그 밑으로 늘 엉성한 흰 귀밑머리가 보였고 가끔은 모자를 벗어 땀을 닦곤 했다. 그때마다 달라붙은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깡마른 얼굴에 광대뼈가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