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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짐

우리 아짐 소순희 아이들의 함성이 도시의 가을 하늘로 풍선처럼 떠 오르고 있었다. 넓은 잎 플라타너스 나무가 투명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운동장 가에는 흰 운동복을 입은 어린아이들이 꼬물꼬물 모여 응원을 하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운동장을 달리고 있었다. 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나는 키 발을 딛고 벽돌 담장 너머로 아이들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들의 함성 속에 함께 묻혀 있자니 불현듯 코끝이 찡해오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건 내 유년의 소상한 기억 저편으로 폴짝 뛰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가을 오후는 늘 서늘했다. 운동회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텅 빈 운동장엔 미루나무 긴 그림자가 줄지어 뻗어 있곤 했다. 이 때 쯤이면 출출해졌다. 빨리 집에 가서 삶아놓은 고구마나, 감나무에 달린 ..

사노라면

사노라면 소순희 가을 햇살은 나뭇잎 그림자 드리운 길과 그 길 위를 걷는 낮은 어깨위로 투명하다 몇천 원이 남은 예금통장을 정리하여 한 권 시집을 사고 마른 잎에서 커피 향 나는 따스한 가을 길을 걸으며 시를 읽네 어떤 부요함 보다 지금 내 가난함이 더 풍요로워 책장 넘기는 살가운 가을 소리 빈 마음에 채워지는 자족의 법 사노라면 마음의 법도 흘러가고 사노라면 이런 따뜻한 한 때도 있거니 나, 가을 햇살아래 맑은 시를 읽네. 2000.소순희 햇볕 좋은 날은 어디론지 무작정 걷고싶다. 늙은 푸라타나스 가로수그늘이 사람들 낮은 어깨위에 추억처럼 투명하게 지나가면 가을은 맘 깊이에도 사랑처럼 내려오나니... 아! 내게도 사는 한 때가 따뜻하다. 원효로 가을길.소순희作

시와 사랑 2005.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