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에서의 하루 기차는 새벽 3시경에 도착했다. 인적 드문 산골의 선평역 새벽 시간엔 역무원도 없다. 개찰구에 표를 던지고 나오자 낮은 지붕의 집들이 검게 엎드려 있다. 청량리역에서 늦은 밤 강릉행 기차를 타고 증산역(지금은 민둥산역)에서 다시 3량으로 갈아타는 구절리역이 종점인 기차는 밤 별을 머리에 이고 산 골골을 돌아 줄곧 달려왔다. 산골의 11월은 이미 겨울이 들어서고 온 누리가 적막하다. 졸다 깬 눈이 퀭한 사람 몇몇이 내려갈 곳으로 다 간 다음, 눈 붙일 여인숙이래도 찾을 양으로 역사를 나와 골목을 헤매었지만, 나그네가 쉴 곳은 없다. 불 켜진 집 대문을 두드려도 인적은 없고 개 짖는 소리만 마을에 퍼진다. 제자 왕근이와 스케치도 할 겸 사진도 찍어야 하는 하루가 바쁘게 열리는 새벽이다. 다리..